“내가 이 모든 것을 지혜로 시험하며 스스로 이르기를 내가 지혜자가 되리라 하였으나 지혜가 나를 멀리하였도다. 무릇 된 것이 멀고 깊고 깊도다. 누가 능히 통달하랴? 내가 돌이켜 전심으로 지혜와 명철을 살피고 궁구하여 악한 것이 어리석은 것이요 어리석은 것이 미친 것인 줄을 알고자 하였더니 내가 깨달은즉 마음이 올무와 그물 같고 손이 포승 같은 여인은 사망보다 독한 자라.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는 저를 피하려니와 죄인은 저에게 잡히리로다”(전7:23-26).

천 번의 제사를 드린 후 하나님으로부터 지혜로운 마음을 받았던 솔로몬이 지혜를 자신의 손 안에 쥐었다고 생각했을 때 지혜는 이미 자기에게서 먼 곳, 깊은 곳에 있다고 고백합니다. 사물의 이치와 행복을 위하여 악한 것, 어리석은 것, 미친 것을 알고 피하는 지식을 구했지만 그것을 아는 것도 그것을 피하는 것도 자신의 지혜와 능력에 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솔로몬이 자신의 비통한 경험으로부터 깨달은 것은 죄가 사망보다 독하다(가혹하다, 쓰다, bitter)는 것입니다. 그는 많은 이방 여인을 사랑했고 그렇게 죄에 빠지는 사람을 잠언에서 “소가 푸주로 가는 것 같고, [어리석은] 새가 빨리 그물로 들어가되 그 생명을 잃어버릴 줄 알지 못하는 것”과 같다고 묘사합니다. 들릴라가 힘으로 삼손을 당할 수는 없었지만 자기 무릎에 누운 그의 머리를 가위로 자를 수는 있었습니다. 멸망에 이르게 하는 죄의 강한 유혹과 그 강한 세력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누구입니까?(롬7:23,24).

오직 많은 사람을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 안에서 신자는 죄의 사함과 죄의 권세를 이기는 힘을 얻습니다.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마6:13).

이강호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