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녹스(1514?-1572.10.29)는 스코틀랜드 내에 장로교회의 기초를 놓았던 스코틀랜드의 종교개혁자입니다. 2014년 영국의 Banner of Truth 출판사가 그의 탄생 500주년을 기념하여 1830년대 스코틀랜드 자유장로교회 출판위원회가 발행한 “존 녹스의 실천적인 저작선집(Select Writings of John Knox)”을 발간했고 이어서 D Laing이 편집한 녹스 전집 6권을 발간했습니다. 이와 함께 근래 영국과 미국에서 녹스의 간략한 전기들이 출판되고 있는 것은 그의 공헌과 가치를 드러냅니다.

본 역자가 그와 관련된 저술들을 모으기 시작한 것이 꽤 오래 되었지만 그의 저술을 탐독하며 한글로 옮길 마음을 가졌던 것은 근래의 일입니다. 그의 글들이 가슴 속 깊이 파고들며 마치 성경의 선지자들과 같은 힘을 가지고 오늘을 사는 신자들을 향해서 외치는 듯 했습니다. 아멘 하면서 읽고 그대로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본 글의 텍스트는 앞서 언급한 (Banner of Truth) 글 모음에는 없고 발행연도가 확실치 않지만 19세기 초 영국문서전도협회(The Religious Tract Society)가 발행한 “존 녹스의 글(Writings of John Knox, London)”을 번역하고 미국 장로교유산출판사(Presbyterian Heritage Publications, Texas)가 1993년도에 발행한 “존 녹스의 글모음(Selected Writings of John Knox)”를 참고했습니다.

지난 세대의 영국의 저명한 복음주의 설교자 로이드 존스가 존 녹스를 크게 칭찬하여 추천했던 일은 괜한 것이 아님을 그의 글을 대하는 사람마다 느낄 것입니다. 주님의 구원의 은총을 입고 그의 나라와 다시 오심을 사모하는 이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2015년 2월

 

Text:

1. Writings of The Rev. John Knox, London: The Religious Tract Society: no date. pp 95-152

2. Selected Writings of John Knox, Presbyterian Heritage Publications, Texas, 1993 pp 219-288.

 

 

영국 내의 하나님의 진리의 고백자들에 대한 충직한 권고

A Faithful Admonition to the Professors of God’s Truth in England, 1554

 

존 녹스는 런던에 있는 그리스도의 교회의 고난 당하는 지체들인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들에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께로부터 은혜와 자비와 평강이 성령의 지속적인 위로와 함께 영원, 영원토록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지금 영국 땅 안에서 고난당하고 있는 사람들을 (특별히 여러 가지 이유들로 인하여 제게 극히 귀한 여러분을) 육신의 아버지가 자기의 사랑하는 자식의 근심과 고통을 덜어주려는 것 만큼 위로하고자 하는 적잖은 소원을 가지고 저는 이 극히 캄캄하고 고통스러운 시대에 하나님의 성경의 어떤 내용이나 부분이 여러분의 안위를 위하여 도움이 되기에 가장 편하고 적합할지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같은 의도로 제가 저의 책을 훑어보면서 우연히 여백에 “비데아 앙글리아(영국이여, 깨어라)”라고 쓴 라틴어 메모를 보았고 제가 그 메모를 생각했을 때 저는 라틴어로 제 책에 기록된 문제가 이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교회를 위로하시기 위하여 뚜렷한 일을 행하시는 경우는 드물지만 시련과 두려움과 고생이 하나님께서 자신의 종들과 일꾼들로 사용하시는 사람들에게 임하고 또 환난은 극히 통상적으로 그리스도 예수께서 가장 진실하게 가르쳐지는 교회를 따라간다.”

이 메모가 적힌 곳은 마태복음 14장이 기록된 성경 부분인데 그리스도 예수께서 사역자들과 종들인 사도들을 시켜서 보리떡 다섯과 물고기 둘로 여자들과 아이들을 제외하고 오천 명을 먹이시고 그들에게 자기보다 앞서 다른 편으로 건너가라고 명하신 곳이었습니다. 그들이 그 일을 순종하려고 시도했고 그 의도로 바다에서 애쓰며 노를 저었으며 밤이 다가왔고 바람은 거스르고 크고 사나운 폭풍이 일어나 그들의 빈약한 배와 그들을 침몰시킬 것 같았습니다. 제가 본문의 상황을 (비통함과 저의 단순함이 용납하는 만큼) 생각했을 때 저는 (하나님께서 아시지만 탄식과 눈물이 없었던 것이 아닙니다) 저 자신에 대한 입장을 생각하고 저 자신의 펜과 메모가 저의 양심에게 증언하는 것처럼 어느 때에 하나님께서 그 문제에 있어서 제게 자신의 거룩한 뜻을 열어 보이셨던 것처럼 혀에 의해서도 분명했었는지 자문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곧 제 마음에 떠올랐던 것은 여러분이 들어야 하고 그리고 하나님의 사자가 영원한 생명의 말씀을 전해야 할 기회와 장소를 하나님께서 주셨을 때 제가 여러분 앞에서 성경의 그 부분을 다루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간략하게 그때 다루어졌다고 믿는 그 일들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것보다 더 유익한 일은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이 극히 비통한 시대가 동일한 것을 우리에게 선언하는 만큼 아마 저에 관해서는 그렇게 분명하게 말한 적이 없고 여러분에 대해서도 그렇게 분명하게 이해한 적도 없을 것입니다.

단어 하나하나 본문을 다룰 필요는 없을 것이며 (이 시대의 상황에서 크게 다르지 않을) 관점들과 견해들을 모으는 전체적인 개요로 충분할 것입니다.

첫째 주목해야 할 것은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이 큰 이적 후에 그는 자신이 먹인 무리들과 함께 머물려고 하지 않으셨고 제자들과도 그렇게 하지 않으셨던 일입니다. 그는 무리들을 보내시며 각자 자신들이 살던 곳으로 돌아가게 하셨고 제자들에게는 바다의 위험으로 보내셨으니 그들에게 어떠한 일이 일어날지 모르셨기 때문이 아니고 그 폭풍을 아셨고 미리 보시고서 그들을 괴롭게 하시려고 그렇게 정하신 것입니다.

유일하시고 참되신 목자(목사)께서 방황하며 약한 양떼를 자기에게서 떠나 멀리 보내시고 유일하게 선견지명을 가지신 감독과 인도자께서 서투른 전사들을 그렇게 큰 위험 가운데 보내신 것이 충분하고도 극히 정당한 이유 없이 되었다고 판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 그리스도께서 백성들을 자기에게서 떠나 보내셨는지 전도자 요한이 분명하게 말합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저희가 와서 자기를 억지로 잡아 임금 삼으려는 줄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가시니라.” 여기에서 그리스도로 하여금 백성들을 자기에게서 떠나 보내도록 작용하게 했던 것이 무엇인지 분명합니다. 그들이 그로 말미암아 그들이 구한 것은 육체적이며 세속적인 자유였으며 그가 전에 그들에게 분명하게 가르치고 선언하셨던 자신의 아버지 하나님의 나라에 관한 하늘의 교훈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던 것이니 그들에게 자기를 따르려고 하는 사람들은 자기의 이름을 위하여 박해를 받으며 모든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게 되며 자신을 부인해야 하고 이리들 가운데 양처럼 보내져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교훈의 어느 부분도 그들을 기쁘게 하지 못했고 또한 그들의 마음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오직 그들의 마음 전체는 자기들의 배(腹)에 있었고 그것을 채우려고 그들은 그리스도 예수를 자기들의 세속적인 왕으로 세워야겠다고 궁리하고 상상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가 원하기만 하면 빵을 불릴 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헛된 견해와 상상을 그리스도 예수께서 알아채시고 그는 그러한 모든 망상을 피하고 그들로 하여금 그 명예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온 자신의 소명과 일치하지 않음을 이해시키려고 그들의 무리에서 스스로 떨어지신 것입니다. 그리고 같은 사람들이 그를 다시 찾았을 때 그는 심하게 그들을 책망하셨으니 그들이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떡으로 자기들의 영혼들을 먹이는 것이 아니라 썩어질 양식으로 자기들의 배를 채우는 것을 더 구했기 때문입니다. 그같이 왜 그리스도께서 잠시 그들에게서 자신이 떠나야 했던 정당한 이유가 백성들에게 있었습니다.

왜 제자들이 그러한 큰 위험과 두려움과 번민을 당해야 했는지 성 마가가 자신의 복음에서 분명하게 말하여 보여줍니다. “이는 저희가 그 떡 떼시던 일을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그 마음이 둔하여졌음이러라.” 곧 자기들의 손으로 큰 무리가 먹었던 떡을 만졌음에도 불구하고 또한 자기들이 기적 전 한 소년이 가지고 다닐 수 있었던 적은 떡덩이로부터 남은 열 두 광주리 가득 모았음에도 불구하고 이 놀라운 기적에 의해서 그리스도 예수의 무한한 권능을 바르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들이 더 나은 교훈을 위하여 그러므로 그들 자신의 몸으로 시련을 겪어야 할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 구주 그리스도 안에서 진심으로 사랑하는 이들이여, 얼마나 풍족하게 얼마나 기적적으로 그리스도 예수의 빈약하고 적은 양떼가 영광과 명예에로 하나님의 택하심과 세움을 입은 그릇인 에드워드 6세의 치하에서 영국 땅 안에서 먹었으며 그리고 다시 지금 분산과 해외로 흩어짐 뿐만 아니라 이 혐오스럽고 잔인하고 가증한 우상숭배자들 아래서 양떼의 닥칠 멸망을 깊이 생각할 때에 제게는 동일한 이유들이 하나님으로 자신의 임재를 무리에게서 거두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사랑하는 종들을 바다로 여행을 보내어 그들로 심하게 흔들리며 고생하며 곧 멸망할 것 같게 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이 예전의 안락과 풍족함 가운데서 복음을 따랐던 극히 큰 무리들의 애정이 무엇이었는지 만일 각 사람의 삶과 일상생활을 철저하게 검토해보면 판단하기 쉬울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안락 속에서 자신을 부인한 것처럼 살았던 사람이 누구입니까? 누가 그 안락 속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처럼 살았습니까? 누가 그 안락 속에서 고난이 자기에게 임할 것을 분명하게 바라보고 살았습니까? 정말로 마치 사망과 죄가 완전히 삼켜버린 것처럼 육신과 세속적인 욕구들에 관심을 가지면서 세상과 그 쾌락을 추구하면서 진미와 기쁨 가운데 살지 않은 사람이 누구입니까? 이것이 그리스도를 땅의 왕으로 삼으려고 했던 것이 아니면 무엇입니까? 우리의 나라, 우리의 기쁨, 우리의 안식과 행복이 땅에 그리고 어떤 일시적인 일에 있지 않았고 있지도 않으며 있을 수도 없으며 다만 “우리가 많은 환난을 겪고 들어갈” 하늘에 있다고 우리가 고백한 말씀이 날마다 우리의 귀에 울렸습니다. 그러나 아! 우리는 안심 가운데 잠을 잤으며 나팔소리는 결코 완전하게 많은 사람들에게 이해될 수 없었다며 다만 우리 스스로 확실한 평온을 항상 확신시키기를 시련에 대한 언급이 하나님의 성경 안에 있지만 이 시대와는 전혀 관련이 없고 다만 우리 앞서 지나간 오래 전 시대에나 관련이 있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우리에게서 그의 진리의 존재를 우리에게서 거둬들이셔야 했고 (우리가 당시에 그의 목소리를 믿을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하심으로써 더욱 간절하게 우리가 그것을 사모하며 더 많은 복종으로 그것을 품고 받게 하시려는 것이었으니 그의 무한한 선하심은 풍성하게 그것을 다시 회복시키는 것을 항상 기뻐하십니다.

저는 단지 자기들의 배만 위하여 그리스도를 따랐던 사람들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자기들이 자기들의 마음의 소원을 그리스도에게서 얻을 수 없는 것을 알아채고 그들은 불평했고 몸과 마음으로 그를 떠났기 때문입니다. 형제들이여, 그런 사람들로 인하여 흔들리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자기들의 고백의 때에 그들은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했고 다만 속이는 자들이며 위선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자기들이 결코 사랑하지 않았던 진리를 모독하도록 정당하게 허락하신 것입니다. 저는 항상 그렇게 속이는 위선자들이 진리를 받아들일 것이라고 말씀드리는 것이 아니라 다만 육신의 약함을 인하여 그리고 (이생에서 완전히 몰아낼 수는 없는) 본성적인 무지에 의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요구한 순종을 드릴 수 없고 지금 믿음의 약함에 의해서 공적으로 대담하게 자기들의 마음이 극히 진실하다고 아는 것을 감히 고백하지도 못하고 다만 과거와 현재의 불완전함을 인하여 탄식하고 슬퍼하는 사람들에 대해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들에게서 그리스도의 사랑스러운 임재는 영원토록 거두시는 법이 없고 다만 그들의 심하게 혼란스러웠던 마음의 눈은 그리스도의 복음의 빛을 다시 보게 되고 거기서 그들은 극히 즐거워할 것입니다.

영국 내에서 큰 무리가 먹었던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인) 이 떡의 분배자들인 [우리] 사역자들은 하나님으로 하여금 우리를 바다로 보내도록 작용했던 우리의 범죄들이 없지 않습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의 범죄도 제게 저 자신의 것만큼 분명한 것이 없기 때문에 단지 저는 저 자신의 고발자가 되겠습니다.

(지극히 비천한) 제가 한때 하나님께서 저를 섬기라고 부르신 그의 식탁 그 부분에서 자신이 그 잔치에 부르신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라고 (그리스도 예수께서 떼신 ) 그 떡을 받도록 세우신 사람들 중 하나였다는 것을 적잖은 사람들이 알고 있습니다. 각 사람이 이 떡에서 어느 부분을 얼마만큼 받았는지 그리고 그들이 받은 것이 그들의 위에 얼마나 합당했는지 규정하고 결정하는 것은 제 지식이나 판단에 있지 않습니다. 다만 이것에 대해 제가 확신하는 것은 그리스도 예수의 축복이 그의 손에서 제가 받은 부분을 넘치게 하여 그 잔치 동안 (저는 그의 이름을 찬양하고 저 자신의 감사할 줄 모름을 탓하려고 이것을 씁니다) 굶주린 영혼이 음식을 사모하고 소리쳤을 때 결코 모자라지 않았었습니다. 그리고 그 잔치 끝에 저 자신의 양심이 증언하는 것은 제 손이 남은 부스러기를 얼마나 풍성하게 모았던지 제 바구니가 다른 것들 중에서 꽉 찼었습니다.

분명한 것은 제 자신의 양심이 제 자신에게 증언하기를 그리스도 예수께서 저를 자신의 일꾼으로 부르실 때 제 학식이 얼마나 모자랐고 제가 판단에 있어서 얼마나 약했으며 또한 만일 제가 날이면 날마다 시간이면 시간마다 얼마나 힘 있게 그가 저에 대한 자신의 은혜를 풍성하게 하셨는지를 감춘다면 저는 극히 악하고 배은망덕한 자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아! 오늘날 저 자신의 양심이 제 자신에게 증언하는 것은 제 마음이 얼마나 무지했으며 제가 그 직분의 존엄과 그때 사람들이 제 손에 받았던 떡을 불리시고 축복하셨던 하나님의 권능을 얼마나 적게 생각했는지요. 저는 제가 그리스도의 손에서 받은 그 떡을 그대로 전했고 제가 그것과 함께 어떤 독도 섞지 않았으니 곧 제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사람의 꿈, 고안, 망상의 혼합물 없이 가르쳤다는 것을 제 양심 안에서 하나님으로 증인으로 삼습니다. 그러나 아! 제가 오늘날 제 직무가 했어야 할 것으로 아는 그러한 열심을 가지고, 그러한 공정함을 가지고, 그러한 부지런함을 다하여 행하지 못했습니다.

당시에 어떤 사람들이 설교자들을 몰지각한 사람들이라고 하고 어떤 사람들은 그들을 욕쟁이들이라고 불렀는데 그들이 당시 궁에서 권세를 가진 사람들뿐만 아니라 도시들, 읍들과 마을들, 땅 전체에 걸쳐서 보편적으로 직분을 가진 사람들의 분명한 범죄행위를 책망했기 때문입니다. 여러 사람들 가운데서 아마 제 거친 솔직함이 제가 사람들의 잘못에 대해 거칠게 말했다고 불평하는 여러 사람들을 불쾌하게 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제가 누구에 대하서 말하는지 모든 사람들이 알고 알아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 오늘날 제 양심은 제게 고소하기를 제가 제 의무가 했어야 할 만큼 매우 분명하게 말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제가 악한 사람에게 이름을 대며 분명하게 “당신이 죽으리라”라고 말했어야 했던 것입니다. 이에 대해 저는 선지자 예레미야가 대제사장 바스훌에게, 왕 시드기야에게 그렇게 했던 것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그 선지자만이 아니라 엘리야, 엘리사, 미가, 아모스, 다니엘, 그리스도 예수께서도 친히, 그리고 그를 이어 사도들이 명백하게 피흘리기를 좋아하는 폭군들, 가증한 우상숭배자들, 자기들의 시대의 겉과 속이 다른 위선자들의 이름을 불렀던 것입니다. 만일 우리 설교자들이 영국 땅 내에서 (다른 사자들이 우리 앞서 받은 것처럼) 세상의 소금으로 하나님에 의해서 세움을 입었다면 아, 명백한 부패가 나타난 곳에서 어찌하여 우리는 소금을 거둬들이는 것입니까? (저는 저 자신을 고소하는 것입니다.) 제가 이 못된 송장에 대해 품었던 맹목적인 사랑이 제가 그 점에 있어서 충분히 열성적이지도 못하고 충실하지도 못했던 최고의 원인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저에 대해 모든 사람들의 미움을 일으키게 할 의도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극히 높은 사람들 앞에서 사람들의 악을 다루되 그들이 스스로 자기들이 범죄자들인 것을 보게 했지만 (저는 제가 극히 못된 아첨꾼이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하게 악한 자들에 대해 명백한 전쟁을 선포하는 것으로 보이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에 대해 거짓 없이 저는 저의 하나님께 자비를 구합니다.

“오 주님! 저의 큰 범죄에 대해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그리고 제 큰 허물에 따라 저를 대하지 마시고 다만 주의 큰 자비를 따라 대해 주옵소서. 제게서 저의 죄의 짐을 옮겨 주옵소서. 왜냐하면 의도적으로, 생각으로 사람의 헛된 노여움을 피하기 위하여 제가 주의 신성한 위엄을 훼방하는 것을 신중하게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주님께 사랑을 받은 사람들이여, 제가 정당한 이유 없이 저 자신을 고소하되 그렇게 함으로써 저 자신을 더 거룩하게 보이려고 하거나 그것을 이유로 저의 다른 형제들, 그리스도의 진실한 설교자들을 유사하거나 더 큰 범죄들로 고소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제 양심에 재판장이시니 저 자신이 그리스도의 복음이 영국에서 자유로운 통로를 가졌던 기간 동안 비탄스럽게 저의 하나님의 존엄을 훼방한 것으로 아는 바 진심으로 심하게 괴로운 마음에서 제가 그렇게 한 것입니다. 그리고 하늘의 떡을 빼앗아 가심과 영국 땅 안에 지금 그리스도의 가난한 제자들에게 불고 있는 이 엄청난 폭풍이 우리로 진실한 회개를 일깨우시려고 우리 하늘의 아버지의 크신 자비로부터 온 것임을 이해시키려고 이렇게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설교자도 고백자도 우리의 자비로운 찾아오심의 때를 옳게 분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마치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악한 행습을 고치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망상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전해진 것처럼 시간을 전적으로 그렇게 써버렸던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그 일을 진심으로 회개한다면 아무리 폭풍이 거셀지라도 그때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셔서 위로해 주실 것입니다. “오, 주여! 주의 이름을 위하여 서둘러 주옵소서!”

마태복음 안에 다른 때에 큰 폭풍이 일어나 제자들이 애쓰고 있는 배를 심하게 흔들었던 때가 나타납니다. 그러나 그때는 낮이었고 그때 그들이 배 안에 예수님과 함께 있었고 (당시에 배 안에서 주무시던) 그를 깨웠으며 그에게 도와달라고 외쳤고 곧 그들의 갑작스러운 두려움에서 해방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들이 격동하는 바다 한 가운데 있었고 밤이었으며 그들의 보혜사 그리스도께서 그들과 함께 계시지 않았고 초경 이경 삼경에도 그들에게 오시지 않으셨습니다. 어떤 두려움이 그들 안에 있었으리라고 여러분은 생각합니까? 그 폭풍 동안 그들의 혼란된 마음에서 어떤 생각들이 일어났겠습니까? 오늘날 영국 땅 안에서 비슷한 위험 가운데 있는 사람들은 이 폭풍에 의해서 저의 펜이 말할 수 있는 것보다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한 가지 확신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임재가 그 큰 당황함 가운데서 그 이전 어느 때보다 더 위로가 되었을 것이며 그들이 인내로 자기들의 믿지 아니함이 책망을 받도록 용납하여 자기들의 즉각적인 죽음을 피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위험의 각 부분을 생각하는 것이 유익하고 또 상당히 우리에게 위로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첫째 여러분이 이해하셔야 할 것은 제자들이 그리스도의 명령에 순종하여 바다로 갔을 때 좋은 날씨였고 전혀 폭풍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갑자기 폭풍이 그들이 자기들의 여행 한 가운데 있을 때 거스르는 바람으로 일어났습니다. 왜냐하면 만일 폭풍이 그들이 나중에 자기들의 여정 한 가운데 있을 때처럼 그들의 바다로 들어가는 시초에 컸었더라면 그들은 그러한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려 했을 것이고 자기들의 힘으로 바다 한 가운데까지 이르는 것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여행을 시작했을 때 바다가 잠잠했다는 것을 매우 분명하게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둘째 주목해야 할 것은 어떤 방도에 의해서 그리고 어떤 도구에 의해서 이 폭풍이 일어났느냐는 것입니다. 그들의 노를 집어넣는 것과 자기들의 작은 배의 힘이 그 큰 바다의 파도를 일으킬 수 있었습니까? 아닙니다. 분명코. 하지만 성령은 바다가 어두울 때에 자기들의 배에 대하여 불었던 크고도 큰 역풍에 의해서 움직였다고 선언하십니다. 그러나 바람이 그것 자체의 명령자도 작동자도 아닌 것을 알 때에 다른 어떤 원인이 필요한 것이고 그것에 대해 우리가 다룰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제자들이 이 거대한 폭풍 안에서 무엇을 했는지 주목하고 고려해야 합니다. 진실로 그들은 역풍의 거대함에 의해서 뭍이나 해안으로 끌려가도록 돌이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파선과 죽음을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계속 바람을 거슬러 힘껏 노를 저었고 무서운 폭풍이 그치기를 기다렸습니다.

주님 안에서 사랑하는 분들이여, 우리가 여기서 읽은 것이 그리스도의 제자들과 그들의 비천한 배에게 일어났었다는 것을 숙고하고 주목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이 불안하고 시련 많은 세상이라는 바다에서 하늘의 항구, 그리스도 예수께서 자신의 택한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영원한 행복의 피난처를 향하여 여행하는 (이 비천한 생애에 단지 비천한 배일 뿐인) 그리스도의 참 교회와 회중에게 같은 일이 일어났었고, 일어나고 있고, 일어날 것임을 잘 아시게 될 것입니다.

저는 이것을 애굽 내의 야곱의 후손에 의해서, 포로 가운데 있던 이스라엘에 의해서,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친히 설교하셨던 때(그리고 그의 부활과 승천 후 얼마 동안)의 교회에 의해서 증명할 수 있으니 그들에 대하여 큰 폭풍이 그들의 고생과 환난의 배 안에 들어간 직후에 일어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바로의 난폭한 선언이 야곱의 자손에 대하여 그가 애굽에 처음 들어갔을 때에 선언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만의 잔인한 계획과 마귀적인 모략이 이스라엘과 유다가 자기들의 땅에서 옮겨진 직후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육체 가운데 제자들과 교통하던 때에 곧 후에 스데반과 다른 제자들에 대한 박해에서 이어졌던 것처럼 하나님의 성도들을 대항하여 그러한 난폭이 사용되었던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그들의 수고의 시작에 있어서 거스르는 바람과 함께 항상 얼마의 평온을 가졌으니 곧 그들이 얼마의 시련을 가졌을지라도 아직 극심한 박해는 없었습니다.

지극히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지금 영국 땅 내의 하나님의 고난당하는 교회에게도 그같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참된 말씀은 반대와 배척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그같이 우리에게 영국 내에 복음의 최근의 솟구침의 시작 때부터 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지금 최근에 격한 바람이 거침없이 우리가 어두움의 시간 가운데 있는 불안한 바다에 불 때까지 우리의 진행을 막지 못했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제 생각을 여러분에게 솔직하게 쓰자면 항상 하나님의 교회에 불어 닥치는 이 바람은 마귀의 악함과 혐오인데 이 경우에 있어서 그 바람에 바르게 비유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바람이 보이지 않지만 가련한 제자들은 그것이 자기들의 배를 흔들고 미는 것을 느끼는 것처럼 악마의 악독한 시기가 그렇게 항상 버림 받은 자들의 마음 안에서 매우 교활하게 간악하게 역사하여 그것이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에 의해서나 그의 사자들에 의해서 먼저 그들이 그것의 불어댐이 자기들의 배를 뒤로 가게 하는 것을 느낄 때까지 알아챌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거센 바람이 바다의 파도로 격동하게 하지만 죽어있는 물은 그것이 무엇을 하는지 알지 못하고 그것을 멈출 수도 막을 수도 없어서 그것이 바람에 의해서 흔들리고 또한 그것이 자기들이 비천한 배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제자들을 괴롭히는 것같이 악마의 시기와 악의에 의해서 악하고 잔인한 부하들이 마음이 격동하는 바다와 같은 군왕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참 교회를 박해하고 괴롭힐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너무 무지하여 악마의 속박아래 붙들려 있어서 그들은 자신들의 명백한 범죄를 볼 수도 없고 또한 자기들의 멸망으로 치닫는 것을 막을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에 대해 영국은 분명한 체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왕 헨리 8세 시대에 어떻게 이리인 저 악한 윈체스터와 다른 사람들이 (악마가 고안한) 난폭한 여섯 신조에 의해서 불쌍한 배와 그리스도의 제자들을 넘어뜨리려고 의도했는지 이미 매우 분명하게 알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때 우리는 배 안에서 주무시는 그리스도 예수님을 모시고 있었으니 그는 그때 고난을 당하고 있었던 사람들의 충실한 울부짖음을 멸시하지 않으시고 자신의 힘 있는 권능, 은혜로우신 선함, 그리고 자신의 거룩한 말씀의 무너뜨릴 수 없는 힘에 의해서 그 악한 바람들을 억제하여 그치며 바다의 격동을 잔잔하게 하시고 평온케 하셨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택하신 사람들의 온 마음들이 영국 땅 내에서 그 갑작스러운 변화에 놀랐으니 한 어린 양 아래서 삼키는 칼의 두려운 날이 신자들의 목에서 떠났고 노략하며 피에 굶주린 이리들의 (저는 악마의 자식들인 교활한 윈체스터와 그들의 형제들에 대해 말하는 것입니다) 횡포가 잠시 제압되었습니다.

하지만 악마는 자기의 바람을 일으키는 것을 그치지 않았고 자신의 악한 앞잡이들에 의해서 본성을 거슬러 한 형제가 다른 형제의 죽음에 동의하는 방도를 발견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항해하는 배의 진로를 막을 수 없었고 배는 악마에도 불구하고 항진했던 것입니다. 당시 악마는 자신의 영광과 예배, 곧 그의 혐오스러운 미사가 백성들 앞에서 저주스러운 우상숭배이며 그것을 의지하는 자들에게 확실한 저주가 된다는 것이 폭로되고 공개되는 것을 알아채고 더 잔혹하게 격분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더욱 교활하게 일하기 시작했고 전에 자기가 이용했었던 같은 도구들이 충분히 용이한 것을 알고 왕 아래서 주요 기둥들이었던 두 사람 사이에 지독한 혐오를 불어넣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불쌍하고(아!) 비열한 노섬벌랜드가 단순한 서머싯이 극히 부당하게 목숨을 잃을 때까지 만족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악마와 그의 지체들인 악독한 교황주의자들이 그를 없애버림으로써 의도했던 것을 하나님께서 제 혀로 한 곳 이상 여러 곳들에서 특별히 여러분 앞에서와 뉴캐슬에서 말하도록 강요하셨으니 로버트 브랜들링 경이 후에 오랫동안 그것을 잊지 않았습니다. 전혀 선한 열매를 맺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울타리와 도랑과 원두막과 포도즙틀을 무너뜨린 포도원에 대한 저의 해석을 그때 그가 바르게 이해했던 것처럼 하나님께서 그때와 다른 때에 그 앞에서 말한 모든 다른 문제들을 이해시켜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가 그날 저의 입으로 말한 무엇이든지 이제 성취되었고 일어나고 있으며 다만 그때 하나님의 진리에 대한 원수들이었던 그 사람과 그와 같은 부류의 다른 사람들이 신속하게 그리고 진실하게 자기들의 완고한 불순종에 대해 회개하지 아니하면 확실하게 곧 있을 마지막 멸망과 진노가 가장 큰 범죄자들에게 아직 임하지 않았다는 것을 그가 기억하게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제 혀를 주관하셔서 저로 공개적으로 선언하게 하셨던 것은 악마와 그의 일꾼들이 그리스도인의 사랑과 받은 은총들을 인하여 매우 확고하게 함께 연합되어 있어야 할 사람들 사이에 지독한 혐오를 불어넣어 하나님의 참 종교를 전복시키려고 했으며 그리고 특별히 악하고 시기심 많은 교황주의자들이 불경한 사랑의 배신으로 말미암아 그의 무죄한 친구의 타도만을 끈질기게 생각했고 그의 죽음을 초래하여 결국 자기의 멸망에 이르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같이 제가 양심적으로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에 걸쳐 주장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한 사람을 제거하는 방도를 보고 고안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없애는 수단 또한 보고 고안하게 되며 그리고 그 모든 시련이 악마와 그의 앞잡이들에 의해서 그리스도의 제자들과 그들의 비천한 배를 멈추고 훼방하려고 계획된 것이었지만 그가 할 수 없었던 것은 아직 그 배가 바다 한 가운데 이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성체변화, 악마가 니콜라스 교황에 의해서 부화했고 그 이후 그의 모든 자식들, 사제들, 수사들, 그의 사주를 받고 충성을 맹세한 병사들, 그리고 이 마지막 날에 주로 스티븐 가드너와 영국 내의 그의 검은 배 새끼들에 의해서 기르고 먹인 새, 성체변화는 당시 분명하게 반박되고 강력하게 폐지되었다고 저는 말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자신의 일꾼들과 사신들에게 지혜를 주셔서 공허한 허영을 드러내셨고 특별히 하나님 안에서 경애하는 아버지 캔터베리 대주교 토머스 크랜머의 펜에 힘을 더하셔서 하나님의 진리를 속박 아래 붙잡아 두려고 악마의 가드너(와 그의 풍뎅이들)에 의해서 연결되고 묶인 악마의 궤변의 매듭을 자르게 하셨으니 저는 오히려 그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속되고 남아서 그들을 혼란케 할) 그의 저술들에 대해 답변하려고 나서기보다 그것들을 정죄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님께서 국회 의사당에 담대함과 지식을 주셔서 교황주의자들의 모든 거룩함이 서 있는 그 둥글게 잘라낸 신을 없애고 주의 만찬에서 보통 떡을 사용하게 하고 전에 그리스도의 참 종교를 더럽혔던 (주의 만찬에서 무릎을 꿇는 것을 제외한) 대부분의 미신들을 제거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그때 배가 바다 한 가운데 있었고 갑자기 무서운 광풍, 극히 무섭고 고통스러운 광풍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우리의 왕이 우리에게서 데려가심을 입었고 악마는 항상 자기의 명령에 순종을 보인 앞잡이들 안에서 바람을 일으켰습니다. 그리고 그들에 의해서 저 비열하고 불행한 사람을 (저는 그를 미워하기보다 측은하게 여깁니다) 선동하여 자기의 후손에게 영국의 왕관이 확립되도록 탐하게 했고 이어 일어난 일은 기록할 필요가 없겠습니다.

주 안에서 사랑하는 분들이여, 이 짧은 강론에서 여러분은 두 가지 특별한 점들을 생각하시고 아셔야 합니다.

1. 악마의 악 전체는 항상 그리스도의 고난당하는 교회를 어지럽히고 무너뜨리려는 이러한 의도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악마와 그의 종들인 해를 끼치는 교황주의자들이 이 모든 그들의 교활한 술책들에 의해서 그리스도의 복음이 영국 내에서 전해지는 시기 동안 그 복음의 전복 외에 그리고 그들이 하나님의 성도들을 박해할 힘을 회복하려는 것 외에 달리 무엇을 의도했겠습니까? 오늘날 어두움의 시간에 얼마동안 그들이 얻은 것은 자신들의 완전한 멸망입니다.

제가 해를 끼치는 교황주의자들의 교활한 술책들이 모든 재앙을 이루었다고 말할지라도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권세와 통치를 거머쥔 사람보다 더 큰 재난을 가져올 사람이 누구이겠습니까? 제가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누가 노섬벌랜드 외에 완강한 용기와 자만한 욕망을 가지고 이 시기에 늘 궁 안에서 좌지우지했습니까? 그러나 제가 여러분에게 묻건대 에드워드 왕 치하에서 조언과 재치에 의해서 모든 것을 다스린 사람은 누구입니까? 제가 그의 이름을 대야 합니까? 저는 지금 저 순수하고 매우 경건한 왕 에드워드 6세 앞에서 그리고 웨스트민스터의 그의 대신 앞에서 심지어 제가 언급한 사람들의 면전에서 전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쁘게 여기셨던 설교에서 혀로 말한 것보다 더 분명하게 쓸 수 없으니 “나와 함께 떡을 먹는 자가 내 발꿈치를 들리라”는 성경의 본문을 다루었습니다. 제가 거기서 선언했던 것은 통상적으로 극히 경건한 군주들이 극히 불경건한 관리들과 극히 불경건한 최고 고문들, 하나님의 참 신앙에 대한 지독한 원수들, 군주들에 대한 반역자들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악함과 불경건이 신속하게 해당 군주들과 경건한 사람들에 의해서 감지되고 발각되지 아니하며 얼마동안 그 교활한 꼭두각시들은 하나님과 그의 진리에 대한 자기들의 악의와 자기들의 사랑스러운 상전들에 대한 자기들의 허물만의 마음을 가려서 세속적인 지혜와 술책에 의해서 마침내 높은 지위들을 차지했습니다. 그리고 이 저의 선언에 대한 증거로 저는 아히도벨, 셉나, 유다의 역사들을 인용했습니다. 그들 중에 앞의 두 사람은 극히 경건한 왕들인 다윗과 히스기야 치하에서 대단한 권세를 가진 고위의 직위와 승진을 차지했고 유다는 그리스도 예수의 전대를 맡았던 자였습니다. 제가 그 문제에 대해 강론하면서 이러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경건한 군왕들이 왜 악한 사람들을 자기들의 고문으로 용납하여 자기들 아래서 지위와 권세를 가지도록 하는가?”

거기에 대해 저는 답하기를 그들이 국가를 다스림에 관하여 세상적인 지혜, 예견, 경험에 있어서 풍족하여 그들의 조언이 매우 필요한 것으로 보이며 그리하여 국가는 그들이 없어서는 안 되며 영토 내에 평온과 조용함을 유지한다는 명분아래 그들이 권세 가운데 유지되었던 것입니다. 혹은 그들이 자기들의 상전들과 하나님의 참된 종교에 대하여 자기들이 품은 악의를 자기들의 가슴 속에 비밀로 간직하여 아무도 알아채지 못하게 하기를 하나님의 허락 하에 그들이 때와 기회를 기다려 그의 모든 해악을 매우 분명하게 드러내어 온 세상이 그것을 알아보도록 할 때까지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아히도벨과 셉나에 의해서 매우 명백했습니다. 왜냐하면 아히도벨에 관하여 그가 다윗의 극히 은밀한 고문이었고 그 날에 그의 계략은 하나님의 묵시와 같았다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셉나는 선한 왕 히스기야에게 한때 감사관과 한때 비서였고 마지막으로 재무관이었으니 만일 그가 왕에 대하여 그리고 하나님의 참 종교에 대하여 품었던 반역과 악의가 명백하게 알려졌더라면 그러한 지위들에 결코 오르지 못했을 것입니다. 아닙니다. 제가 인용하는바 셉나는 교활한 여우였고 왕에게 아름다운 얼굴을 보일 수 있어서 그나 그의 대신이 그의 악한 반역을 알아챌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선지자 이사야는 하나님에 의해서 그의 앞에 가서 그의 반역적인 마음과 비참한 끝을 선언하라는 명을 받았습니다.

다윗과 히스기야가 교활한 자문들과 표리부동한 위선자들에 의해서 능욕을 당한 위대하고 경건한 은사들과 경험을 가진 왕들이었느냐고 제가 말했었습니다. 그렇다면 어리고 순수한 왕이 교활하고 탐욕스럽고 악하고 불경건한 고문들에 의해서 기만당하는 것이 무슨 이상한 일이 됩니까? 저는 아히도벨이 고문이며 유다가 지갑을 가졌고 셉나가 서기이며 감사관이며 재무관인 것이 크게 두렵습니다.

이것과 상당하게 더 많은 것을 제가 그날에 구석이 아니라 (아직 많은 사람이 증언할 수 있는바) 제 양심이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고 판단했던 사람들 앞에서도 말했던 것입니다. 오! 모든 중요한 문제에 있어서 추밀원에 영혼과 생명이라고 판단을 받았던 사람이 누구였습니까? 셉나가 아니면 누구입니까? 누가 사업을 가장 잘 처리하여 대신들의 나머지 사람들이 자기의 욕망을 탐색하고 사냥하고 취하게 했습니까? 셉나 같은 이가 없습니다. 서머싯을 멸하고 노섬벌랜드를 세우는데 가장 솔직하고 적극적인 사람이 누구였습니까? 셉나가 아니었습니까? “악당, 악당, 근친상간의 악당, 메리는 결코 우리를 다스릴 수 없다”고 가장 대담하게 부르짖은 사람이 누구였습니까? 그리고 여러분에게 묻건대 가장 분주하게 이 말을 했던 사람이 누구입니까? “폐왕 전하의 가장 명예로운 추밀원의 귀족들과 함께 서명하기를 두려워하지 않습니까? 왕 폐하의 마지막 유언과 완전한 증언에 동의하고 그 완고한 여자가 권좌에 오르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그 여자는 잘못된 교황주의자입니다. 그녀는 참 종교를 타도할 것이며 이방인들을 끌어들여 이 나라를 멸망으로 이끌 것입니다.” 추밀원의 무엇이 지금 메리에게 바짝 엎드리고 무릎을 꿇은 사람의 이러한 큰 설득보다 더했습니까? 그러한 반역적이고 표리부동한 위선자들이 모든 이러저러한 교활한 술책과 허울만의 진언에 의해서 무엇을 의도했겠습니까? 의심의 여지없이 당시 영국 내에서 번성하기 시작했던) 그리스도의 참 종교의 전복이었습니다. 그들의 자유가 지금 자기들의 오랫동안 사모하던 날들을 얻었지만 자기들 자신의 멸망과 수치가 될 악독한 교황주의자들을 떨게 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지도자들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재앙들이 그들을 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남들을 위하여 설치한 덫에 잡힐 것이니 그들 자신들의 계략이 그들 자신을 거만하고 악독하고 불충하고 악한 나라에 노예들로 만들 것이기 때문입니다.

2. 그러나 우리의 강론의 두 번째 논지는 이것입니다. 이 땅의 폭군들이 오랜 경험에 의해서 자기들이 결코 하나님의 진리에 대항하여 이길 수 없다는 것을 배우겠지만 자신들이 자기들의 상전 악마의 묶인 노예들이기 때문에 자기들이 악마가 밤의 어둠 속에서 자기의 바람을 일으킬 때, 곧 그리스도의 복음의 빛이 취해 감을 입고 악마가 우상숭배와 미신과 난폭에 의해서 다스릴 때 그리스도의 지체들을 박해하기를 멈출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세상의 시작부터 그리스도의 때까지 그리고 그때부터 오늘날까지 매우 명백하게 볼 수 있습니다. 이스마엘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약속을 이삭에게 하셨고 틀림없이 그들의 아버지 아브라함이 자신의 가족 전체에게 가르쳤을 것이기 때문에 자신이 그를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아챘을 것입니다. 바로는 여러 이적들에 의해서 이스라엘은 자신이 완전히 멸할 수 없는 하나님의 백성임을 분명하게 보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과 대제사장들은 자기들의 양심 안에서 그리스도의 교훈 전체는 하나님께 속한 것이고 그의 기적들과 역사들은 하나님의 권능에 의해서 행해진 것이며 그러므로 자기들이 그를 대항하여 이길 수 없음을 완전하게 확신했습니다. 하지만 악마가 그들을 선동할 때 그들 중에 아무도 자기들이 가장 확실하게 무죄하다고 알고 있는 그를 박해하는 것을 그칠 수 없었습니다.

제가 이것을 쓰는 것은 여러분들이 지금 독을 품은 교황주의자들인 악한 윈체스터와 꿈꾸는 더럼이 (때로 매우 혼란하여 자기들이 감히 자기들의 이단을 방어하여 말하거나 쓰지 못했던) 자기들의 파당 나머지와 함께 마치 자기들이 자신의 참된 사자들에 의해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권능을 결코 시험해 본 적이 없는 것처럼 하나님의 영원한 진리에 대항하여 격분하고 이기고 있는 것을 이상히 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이 세상의 폭군들이 그렇게 가장한 괴물들의 잔인한 조언에 순종하며 기꺼이 따르는 이것에 놀라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이 사람도 저 사람도 삼갈 수 없는 것이 (자기들의 왕이며 부친인) 악마를 순종하는 일에 매여 있기 때문이니 불안정한 바다가 거센 바람이 거기에 불 때 파도를 올리는 것과 같습니다.

악마가 어느 사람에 대해 그러한 힘을 가진다는 것을 듣는 것이 두려운 일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그렇게 우리를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것이 우리의 환상에 반대할지라도 우리는 그것을 믿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악마가 이 세상의 왕과 신으로 불리는 것은 그가 그 안에서 다스리고 그 안에서 난폭과 우상숭배에 의해서 명예롭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는 공중에서 권세를 가진 어두움의 왕으로 불립니다. 그가 불신앙의 자녀들 가운데 역사하고 있다고 말씀하니 그가 그들을 부추겨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괴롭히기 때문입니다. 마치 그가 사울에게 들어가 그로 다윗을 박해하도록 만들었고 마찬가지로 유다의 마음에 들어가 자신의 주를 배반하게 했던 것입니다. 그는 자만의 아들들에 대한 왕으로 하나님의 진리에 거짓말쟁이와 적들인 모든 사람의 아비로 불립니다. 전에 그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참된 진리를 박해하도록 악마에 의해서 이끌림을 받고 감화를 받았던 것을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바 오늘날 그에 못잖은 권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악마가 그의 순종하는 종들인 교활한 윈체스터, 꿈꾸는 더럼, 그리고 피의 보너가 나머지 피에 주린 백정과 함께 격분하고 있다고 제가 말한다고 놀라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지금이 그들의 때이고 권세가 그들에게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사나운 격분을 멈추거나 줄일 수 없는 것은 자기들의 아비인 악마가 자기의 뜻대로 그들을 충동하고 부리고 끌고 다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제가 잔인한 폭군들 안에서 일하는 악마의 권능에 대해 선언하는 이것에서 제가 그에게나 그들에게 자기들 취향대로 권세를 돌리거나 주는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형제들이여,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악마는 실체들을 괴롭힐 힘이 없고 다만 하나님이 허용하시는 한도 내에서 가능하며 그래서 세상의 폭군들은 그들의 멍에가 하나님의 손에 의해서 풀어지지 않는 한 (악마가 그들의 마음을 완전히 점령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성도들을 괴롭힐 힘을 전혀 가지지 못한 것입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이 난폭한 폭군들이 영국 땅 안에서 지금 감금에서 풀린 노략하는 사자처럼 남자와 여자를 죽이고 살해하고 멸하고 삼킨다는 것을 제가 듣는 때인 오늘날 저의 특별한 위안에 굳게 서십시오. 그러므로 저는 저의 범죄와 현재의 괴로움이 용납하는 한 제 마음의 눈을 높이 들어 저의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오 주여! 저 잔인한 폭군들이 우리의 이전의 감사하지 않음을 벌하시려고 주의 손에 의해서 놓였으니 우리가 믿기로 주께서 영원토록 그들로 이기게 하지 않으실 것이며 주께서 우리를 잠깐 징계하시고 그들의 굳어진 가슴에 웅크린 난폭을 세상에 드러냈을 때 그때 주께서 그들의 턱뼈를 부수시고 다시 그들의 동굴에 가두셔서 그 세대와 이어지는 후손이 주의 회중 앞에서 주의 거룩한 이름을 찬양하게 하실 것입니다. 아멘.”

제가 이러한 약속들에 대한 어떤 의향이나 동기를 느낄 때 하나님께서 영국 내에 그의 고난 받는 교회에게 자비를 보이시며 그가 우리 시대 앞서 있었던 사람들에 대해 행하셨던 것처럼 이 현재의 폭군들의 자만을 억제하실 것을 알 때 비록 저와 땅에서 제게 속한 모든 사람들이 즉각적인 죽음을 당할지라도 저 자신이 극히 행복하며 제 자신이 정당한 보상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두려움으로 약해진 여러분의 손을 들어 하나님을 굳게 잡으시고 이 비통한 날에 근심 중에 잠자는 여러분의 마음을 일깨워 자신을 걸어 맹세하시기를 자신의 교회로 하여금 영원토록 짓눌리도록 허락하지 않을 것이며 만일 우리가 이 거대한 바람을 거슬러 노를 젓고 애쓰면 우리의 울음을 끝까지 멸시하지 않겠다고 하시는 여러분의 하나님의 목소리를 들으십시오. 제가 말하는 뜻은 만일 우리가 곧바로 우상숭배로 돌아서지 않는 한 이 폭풍은 악마에도 불구하고 잠잠해지리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신속하게 여러분에게 오셔서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 그가 바람을 지나오실 것이고 격동하는 바다는 순종할 것이며 단단하고 안정되고 마른 땅처럼 그의 발과 몸을 받들 것입니다. 여러분의 믿음의 확고한 토대에서 흔들리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그리스도 예수께서 (그 큰 폭풍 중에 제자들에게서 그러하셨던 것처럼) 육신의 임재로서는 여러분에게서 떠나 계시지만 그는 자신의 전능한 힘과 은혜에 의해서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는 안전과 안식으로 산에 서 계십니다. 곧 그의 육신(과 인성 전체)은 지금 하늘에 계시고 때로 그가 당하셨던 그러한 시련을 당하실 수 없지만 그는 동정과 긍휼이 충만하시고 모든 우리의 고생, 근심, 수고를 생각하십니다. 그러므로 그가 갑자기 나타나셔서 우리의 큰 위로가 되실 것을 의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휘몰아치는 바람과 격동하는 바다가 제자들로 하여금 당장의 죽음 외에 아무 것도 바랄 것이 없게 했을 때 그리스도께서 그들에게 오시는 것을 방해하지 못한 것처럼 이 세상의 폭군들이 그의 오심을 제지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제가 다시 말씀드리니 주님 안에서 사랑하는 이들이여, 여러분의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진심으로 회개하는 죄인들에게 하신 약속들을 주목하게 하시고 굳건한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자신의 약속들을 수행하심에 있어서 항상 진실하시고 의로우시다는 것을 완전 확신하십시오. 여러분들이 매우 분명하게 여러분의 마음들이 어떤 위험도 두려워하지 않았을 때 이날들에 대해 들으셨으니 여러분이 육지에 가까웠고 폭풍이 아직 일어나지 않았을 때 곧 여러분이 어떠한 박해를 보거나 느끼지 못하는 그리스도의 어린 학생들이었을 때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여러분은 바다 한 가운데 이르렀고 (영국 안에서 여러분의 고백에 대해 듣지 못한 곳이 있습니까?) 우리가 그때 거의 모든 권면에서 말했던 거대한 폭풍이 이제 갑자기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입니까! 여러분을 그렇게 인도하여 여러분이 몸과 영혼으로 모두 멸망하게 하신다고요?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비와 진리에 대한 저의 믿음 전체는 정반대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애굽으로 불러들이시고 거기서 홍해를 지나게 하신 것은 그들을 멸망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친히 그것들로부터 자신의 극히 영광스러운 구원을 보여주시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사도들을 바다 한 가운데로 보내셔서 휘몰아치는 폭풍으로 그들과 그들의 배를 공격하도록 허용하신 것은 그들이 거기서 멸망하게 하시려는 의도가 아니고 그가 능력있게 그들을 멸망에 대한 두려움에서 건져내심으로 그들을 향한 자신의 큰 선하심을 더 느끼고 실감케 하며 그렇게 하심으로 우리로 하여금 만일 우리가 미신과 우상숭배에서 떠나 우리의 고백과 신앙 안에 확고하게 머물면 그가 우리에게 동일하게 행하시리라는 모범을 우리에게 제시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여러분에게 이날들에 대한 경고를 제시했습니다. 그리스도의 피에 대한 두려움을 인하여 이 말씀을 주목하십시오. “이 극히 비통한 날들에 대해 전에 말했던 동일한 진리가 또한 끝까지 견디는 사람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히 지속되는 기쁨을 미리 말한 것이다.” 오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시련이 왔습니다. 위안을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사도들의 본을 따라서) 이 거대한 풍랑을 저항하면서 잠깐 동안 참으십시오.

삼경이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사경이 되기까지 자신의 제자들에게 오시지 않았고 그들이 그때 여러분이 지금 처한 것 이상 상당한 위험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께서는 그들이 그를 찾지 않을 때 오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믿음은 지쳤고 그들의 몸은 위험 가운데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같이 만일 여러분이 행한 고백 안에 계속 있으면 여러분에게 그같이 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듣고 받은 영원한 진리와 영광스러운 복음을 주셨으며 또한 제 마음 안에 (제가 거짓말하지 않는 것을 하나님께서 아시니) 여러분의 구원을 간절한 열망과 또한 제가 지금 밝히려고 하지 않는 여러분의 몸에 대한 어떤 염려를 불어넣으신 분의 이름으로 담대하게 이것을 약속드립니다.

이같이 제가 간략하게 큰 무리가 그리스도에 의해서 광야에서 먹은 후 그리스도의 제자들을 시험했던 격렬한 폭풍을 다루어 오면서 본문에서 주목해도 좋았을 여러 유익한 점들을 생략했던 것은 현재로서 제 의도가 장황한 것도 아니고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도 아니며 다만 이 지극히 비통한 시절에 부합하는 일들에 주목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이제 이 폭풍과 시련의 목적에 대해 말씀드릴 생각이며 거기서 주목해야 할 네 가지 일들을 찾을 수 있습니다.

첫째 제자들이 그리스도의 임재에 대해 그들이 전보다 더 두려워했던 일입니다.

둘째 그리스도께서 그들의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하여 자신의 말씀 외에 다른 수단을 사용하시지 않으신 일입니다.

셋째 베드로는 열심 가운데 먼저 배를 떠났지만 후에는 두려워했던 일입니다.

마지막으로 그리스도께서 베드로나 다른 제자들로 그 두려움 가운데 멸망당하는 것을 허락지 않으시고 영광스럽게 모두를 구원하시고 폭풍을 가라앉히신 일입니다.

본 강론에서 영들에 관하여 말하거나 영들이 선악간에 사람들에게 나타나 두렵게 할 수 있는지 아닌지 혹은 사람의 본성이 영들을 왜 두려워하는지 그리고 그들의 임재나 동행을 몹시 싫어하는지 탐구하려는 것은 제 의도가 아닙니다. 다만 제 의도는 이 때에 필요한 일들에 관하여 말하려는 것입니다.

첫째 왜 제자들이 그리스도를 알지 못했고 영이라고 그를 판단했는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 원인은 밤의 어두움이었습니다. 둘째는 나타난 익숙하지 않은 광경이었습니다. 셋째는 그들로 자신들의 안전을 위하여 열심히 힘쓰게 만들었던 위험과 폭풍이었습니다.

밤의 어둠이 그들의 눈으로 그를 보지 못하도록 막았습니다. (그들이 자기들의 주 그리스도께서 가지신 것으로 알고 있는)사람의 단단하고 무겁고 육중한 몸이 걷고 다니고 격동하는 바다의 물에 의해서 지지를 받고 가라앉지 않는 것은 본성을 넘어선 일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폭풍에 대한 무서움과 그들이 처했던 큰 위험이 그들로 하여금 빠져죽지 않으려거든 다른 아무 것도 바라보지 말라고 설득했을 것입니다. 이 모든 세 가지 일들이 동시에 일어나 그들을 이 생각에 확증시켜서 그들의 큰 위로와 해방을 위하여 오셨던 그리스도 예수는 그들을 멸망시키러 나타난 무섭고 악한 영이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그리스도 예수 자신께 일어났던 것은 제가 그의 복된 말씀의 진실성을 위하여 처음부터 온 시대에 일어났었고 매일 일어난다는 것을 입증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친히 이 그들의 시련 속에서 그의 제자들에 의해서 얼핏 보기에 영이나 환상적인 몸으로 판단을 받고 여김을 받았던 것이고 그같이 사람의 안위와 죄로부터의 구원, 양심의 평안을 위하여 하나님에 의해서 보내신 진리와 그의 영광스러운 복음의 진실한 설교가 처음 제시되고 진실하게 전해졌을 때 다름 아니라 사람을 멸망시키려고 마귀에 의해서 보내진 이단과 기만적인 교훈으로 판단되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것의 원인은 처음부터 매 시대에 세상에 넘쳤던 하나님께 대한 캄캄한 무지였으니 때때로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도 버림을 받은 자들처럼 비슷한 무지함과 오류 가운데 있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우상숭배자였고 모세는 애굽의 모든 도에 교육을 받았고 교만한 바리새인 바울은 그리스도와 그의 교훈을 배척했고 이 시대의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진리가 자기들에게 제안되었을 때 심하게 두려워하며 그것을 반대하여 외쳤습니다. 다만 무지의 어두운 구름이 전에 그들을 괴롭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 문제를 더 나은 기회가 있을 때까지 생략하고 지나가겠습니다.

제가 여러분으로 제자들의 이 터무니없는 두려움 속에서 잘 주목하고 생각하게 하고 싶은 최고의 주의는 이것입니다. “해방과 구원이 다가올수록 하나님의 교회의 시험이 더 강하고 크며, 하나님의 진노가 악인들에게 다가올수록 그들이 더 거만하고 잔인하고 오만하다.” 그리하여 통상적으로 생명의 사신들이 모든 재난의 장본인들로 판단을 받고 간주되는 일이 발생하며 여러 역사들에 있어서 이것이 명백합니다. 하나님께서 고난 받는 이스라엘사람들을 모세의 손으로 애굽사람들의 횡포에서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시고 모세가 그러한 목적으로 바로 앞에 파송되었을 때 그들에게 새롭게 가해진 잔혹함에 의해서 그들의 고통과 근심이 극심하여 그들은 입을 열어 모세와 아론이 자기들의 지난 극심한 괴로움의 모든 원인이라고 주장하면서 모세를 (틀림없이 마음으로 그를 보낸 하나님도 미워했을 것입니다) 저주했던 것입니다.

같은 것을 열왕기서에서 선지자들인 엘리사와 이사야에게서 볼 수 있습니다. 아합의 아들 요람의 시대에 사마리아가 수리아 왕에게 포위되었고 사마리아 성에는 (왕과 대부분 무리가 악했을지라도) 하나님의 택하신 교회의 약간의 지체들이 있었고 그들은 헐값의 물건이 엄청난 값으로 팔렸으며 여자들도 본성을 거슬려 자기의 자식들을 먹을 수 밖에 없는 극한 기근에 처했습니다. 바로 이 도시 안에 선지자 엘리사가 극히 통상적으로 교류하고 있었고 거주했으며 틀림없이 그의 조언과 명령에 의해서 그 도시가 보존되었던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왕이 그 여인의 가련한 불평을 듣고 엘리사의 목이 그의 어깨 위에 그날 붙어있지 못할 것이라는 맹세와 서약에 의해서 자기 옷을 찢었을 때 왕은 그것을 그의 책임으로 돌렸기 때문입니다. 만일 엘리사가 그 도시가 보존되리라고 조언을 하지 않았더라면 어찌하여 왕이 다른 사람이 아닌 그에 대해 더 격분했겠습니까? 그러나 그가 그 도시를 방어할 당사자였든 아니든 모든 것이 제 의도에는 마찬가지이니 해방 전 교회가 극한 상황에 있을 때 당시의 최고 목사가 마땅히 그를 보호했어야 할 사람들에 의해서 수색을 당하여 죽을 처지에 있었던 것입니다.

같은 일을 히스기야에 대해 읽을 수 있으니 (틀림없이 이사야의 권고에 복종하여) 자기의 성 예루살렘을 방어하며 거만한 산헤립을 저항하면서 마침내 랍사게의 신성모독적인 말에 의해서 근심과 수치에 짓눌려서 그는 여호와의 성소에서 그 오만하고 오만한 폭군에 의해서 자기에게 보내진 경멸적인 편지들을 여는 것 외에 다른 피난처가 없었습니다.

이것들과 다른 여러 역사들에 의해서 구원과 해방이 다가올수록 시험과 시련이 더 큰 것이 매우 명백합니다.

제가 이것을 써서 여러분에게 권고하는 것은 환난이 심하게 넘쳐서 위로에 대한 모든 소망도 없이 극심한 비참 외에 보이는 것이 전혀 없을지라도 여러분은 결코 하나님께로부터 물러서지 마시라는 것입니다. 때로 여러분이 생명의 사신들을 미워하는 마음이 일어날지라도 그로 말미암아 여러분이 하나님께서 후에 결코 자비를 보이시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하지 마시라는 것입니다. 아닙니다.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그가 여러분 앞서 다른 사람들에게 대하신 것처럼 여러분에게 그렇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환난과 슬픔으로 넘치도록 용납하셔서 어떠한 방식의 위안도 사람 안에서 볼 수 없게 하시는 것은 해방이 왔을 때 영광이 그의 것이 되게 하시려는 것이니 그의 말씀만이 지극히 거대한 폭풍들을 잔잔케 하실 수 있습니다.

그는 바로와 그의 군대를 빠뜨리셨습니다. 그는 벤하닷의 큰 무리들을 흩으셨고 그리하여 완전한 멸망 외에 아무 것도 그들에게 보이지 않았을 때 그의 천사에 의해서 산헤립의 군대를 죽이셨습니다.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만일 인내하며 여러분이 그의 위로와 조언을 붙든다면 그가 여러분에게 그같이 행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눈을 열어 여러분이 제 글의 의미를 바르게 이해하게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그렇지만 아마 여러분은 왜 하나님께서 그러한 피에 굶주린 폭군들로 자신의 택하신 교회를 괴롭히고 슬프게 하도록 용납하시는지 상당히 이상히 여기실 것입니다. 제가 전에 몇 가지 이유를 열거해 드렸습니다만 지금은 한 가지만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하나님의 공의가 이러하니 버림받은 자들에 대한 그의 극심한 진노를 쏟으시는 것은 그들의 범죄가 아주 명백하여 그들의 아첨꾼들조차 그것을 변명할 수 없을 때입니다. 바로는 그의 자신의 가속 하인들과 신하들이 그의 완고한 불순종을 미워하고 비난하기까지 멸망하지 않았습니다. 이세벨과 아달랴는 온 이스라엘과 유다가 그들의 잔인함과 가증한 것들에 대한 목격자들이 될 때까지 이생에서 지옥으로 쫓겨나지 않았습니다. 유다는 제사장들 가운데 지도자들이 그의 반역적인 행위와 불법의 증언할 때까지 목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진노를 쏟으신 옛 시대의 폭군들을 떠나 이제 영국 땅 내에 있는 폭군들에 이르렀는데 하나님께서 그들을 오래 남겨두지 않으실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윈체스터, 더럼, 런던의 거짓 주교들인) 스티븐 가드너, 쿠스버트 톤스털, 그리고 인간백정 보너를 그들의 거짓된 교훈과 반역적인 행위들로 인하여 그들이 그것을 정당하게 받을만한 때에 죽음을 당하게 하셨다면 그때 잘못된 교황주의자들이 (저와 다른 사람들이 그들이 하는 말을 들었는데) 주장하기를 그들은 고칠 수 있는 사람들이었고 그들이 국가를 위하여 합당한 도구들이었으며 그들이 판단을 받고 있는 것만큼 그렇게 완고하고 악한 사람들이 아니었으며 그들이 누구의 피에 굶주렸던 것도 아니라고 할 것입니다. 그리고 메리 여왕에 대해 그가 맑은 정신에 자비로웠으며 영국을 사랑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듣지 못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만일 그녀와 지금 그녀의 악독한 추밀원에 속한 사람들이 오늘날 이전에 지옥으로 보내졌다면 그들의 범죄와 잔인함이 세상에 그렇게 명백하게 드러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녀가 무죄한 사람들과 공정한 법들과 충실한 증인들에 의해서 그들이 죄를 범했다고 결코 증명될 수 없는 사람들의 피에 굶주렸던 그러한 잔혹함이 한 여인의 마음속에, 처녀로 불리는 그녀의 마음속에 들어가리라고 누가 감히 생각이나 할 수 있었겠습니까?

저는 아달랴가 지배에 대한 욕망 때문에 유다 왕들의 자손들을 죽였고 헤로디아의 딸이 음란한 어미의 소원에 따라 세례자 요한의 목을 받았던 것을 발견합니다. 그러나 “가장 복된 처녀”로 불리도록 용납한 한 여인이 약탈한 권세를 확보하려고 그렇게 많은 피를 흘리게 했던 것은 성경이나 다른 역사들 가운데서 찾아보기 힘들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저는 그 못된 우상숭배자 이세벨이 하나님의 선지자들의 피를 흘리게 했고 나봇으로 자신의 포도원을 인하여 부당하게 살해되도록 했지만 해로운 메리가 런던 안에서만 행한 것의 반 만큼의 교수대를 온 이스라엘에 세우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교황주의자들이여, 여러분이 여러분의 동정녀 메리를 변명할 것입니다. 좋습니다. 그녀로 여러분의 동정녀, 그러한 우상숭배자들을 존속시키기에 합당한 여신으로 삼으십시오. 하지만 나는 여기서 내 펜을 잠시 여러분에게 돌리겠습니다. 오, 뱀의 후손이여! 이 질문에 답해 보시오! 여러분 중에 누가 2년 전에 여러분의 귀감 메리가 거짓되고 겉과 속이 다르며 변덕스럽고 거만하고 그녀가 여러분의 신 교황에게 한 약속들을 제외하고 약속들을 어기는 자여서 그의 고상한 아버지에게 큰 수치와 불명예가 되었다고 고백했겠습니까? 제가 확신하기로는 여러분이 그녀 안에서 그것을 여러분이 전혀 생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지금 그녀가 영국 왕관에 공적인 반역자로 스스로를 명백하게 나타내고 있지 않습니까? 그 땅의 공정한 법들을 거스르고 이방인을 끌어들여 스페인사람을 왕으로 삼아 귀족들의 수치와 불명예와 파멸이 되게 하고 그들과 그들의 것에서 그들의 명예, 토지, 소유, 주요 직위, 지위를 빼앗고, 그 땅의 보화, 물품, 해군, 요새들의 완전한 몰락이 되게 하며, 용병들을 실추시키며, 평민들을 예속시키고, 기독교와 하나님의 참 종교를 무너뜨리며, 마지막으로 영국의 공적인 전체 지위와 국가의 완전한 전복을 도모하고 있지 않습니까? 노퍽과 서퍽으로 하여금, 그녀 자신의 약속과 선포로 하여금, 그녀의 부친의 유언으로 하여금, 런던 시로 하여금, 전에 영국 내에서 확립되었던 의회의 옛 법들과 규칙들로 하여금 저의 고소와 그녀의 극히 난폭한 범죄 사이에 재판관들이 되게 하십시오.

첫째, 그녀의 약속과 선언이 자신은 어떤 이방인을 끌어들이지도 혼인하지도 않겠다는 것을 나타내며 선언합니다. 노퍽과 서퍽 그리고 런던 시가 이것을 입증하고 증언합니다. 의회의 옛 법들과 결정들이 영국의 왕위를 이방국가의 손에 넘기는 것을 반역이라고 선언합니다. 해당 법들을 준수하도록 가해진 서약은 그녀의 반역적인 사실에 동의하는 모든 사람들이 위증했다고 외칩니다.

오, 당신들 교황주의자들이여! 이제 말하고 당신들의 가공할 여주인을 방어하고 염치가 있어서 할 수 있다면 그녀가 스스로 숭고한 영국의 파멸과 멸망을 위하여 태어났다고 발언하지 않았다는 것을 부인해 보십시오.

오! 그러한 비본성적인 잔인함이 이성을 가진 사람을 지배하게 되리라고 누가 믿으려고 한 적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감성적인 여성의 약탈한 권세는 이성 없는 격분이라는 말은 너무나 진리입니다.

누가 그 악한 여인을 낳고 먹이고 숭고하게 받들었던 그 땅에 대한 사랑이 그녀의 마음을 동정으로 어느 정도 움직이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이제 그녀의 모든 행위들 가운에서 영국인의 이름 아래 스페인사람의 마음을 가진 것을 매우 분명하게 선언하고 있는 것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의 채찍으로 그녀와 그의 잔인한 추밀원으로 권세에 이르도록 용납하지 않으셨다면 하나님을 향하여, 그의 성도들을 향하여, 그들이 자유를 지키기로 맹세한 그 땅을 향하여 이러한 그들의 가증함, 잔혹함, 반역이 그렇게 명백하게 선언된 일은 결코 없었을 것입니다.

(모든 교황주의자들이 자기들의 나라를 향하여 가진 사랑을 인하여 칭찬했던) 명예로운 가드너, 반역적인 톤스털이 (그들이 외국의 이방인이 영국을 다스린다는 것을 결코 동의하거나 합의하지 않겠다는) 자신들의 엄숙한 서약에 반대될 뿐만 아니라 자기들이 영국의 왕관이 상속과 직계자손에 의해서 스페인사람과 관련이 있다고 판단하려고 하는 그렇게 명백한 반역자들이 되리라고 누가 믿을 수나 있었겠습니까? 오, 반역자들이여, 반역자들이여! 너희가 부끄러워서 어떻게 얼굴을 들 수 있겠는가?

1552년 크리스마스 날에 뉴캐슬 어펀 타인에서 설교하면서 교황주의자들의 완고함을 반박하며 저는 누구든지 마음으로 당시 영국 땅 내에서 전해진 그리스도의 복음과 교훈에 적인 사람은 하나님께 적이며 영국의 왕관과 국가에 은밀한 반역자라고 확언했던 일이 생각납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자기들의 불법이 확고하게 서게 하려고 왕의 죽음 외에 더 갈망하는 것이 없었고 그래서 자기들의 우상숭배가 다시 서도록 하기 위해서 누가 자기들을 다스리던지 상관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저의 이 말이 사람들을 어떻게 만족시켰는지는 저를 대하여 의도된 범죄들과 행동들이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저의 적들로 만일 저의 그 말들이 사실로 드러나지 않았는지 양심적으로 말해보라고 하십시오.

윈체스터와 나머지 그의 악독한 파당이 게걸스럽게 스페인사람으로 영국을 통치하게 하려고 했던 원인은 무엇입니까? 그 원인은 명백합니다. 왜냐하면 그 나라 전체가 우상숭배, 헛되고 교황주의적이고 악마적인 예식들에 대한 자랑과 방종에 있어서 다른 모든 나라들을 압도하는 만큼 그들이 미신의 자식들이라고 불리는 것이 적절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적그리스도의 자손에 의해서 저 잔인한 짐승의 왕국을 유지하고 확립하고 방어하기에 극히 적절한 도구들로 발견되고 인정을 받고 있으니 그의 머리와 상처가 근래 치료를 영국 내에서 치유를 받았으니 아, (불쌍하여라) 영국은 지금 예속과 굴종으로 들어가게 되었고 악독한 교황주의자들이 형벌 없이 다스리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오, 윈체스터, 어느 맹수보다 더 잔혹한 짐승인 너에게 내가 말한다. 수치도, 두려움도, 받은 은총도 너의 난폭한 잔혹함을 굴레 씌울 수 없는가? 너, 피흘리는 짐승이여, 너의 조국과 그 나라의 자유를 배반하기를 부끄러워하지 않는가? 네가 모든 불법에 문을 열게 하여 영국전체가 스페인사람들에게 매춘굴이 되게 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가? 너는 그 숭고한 땅으로부터 받은 은총을 그러한 배은망덕으로 갚는 것인가? 영국이 너를 낳았으며 영국이 너를 먹였으며 영국이 너를 풍요와 명예와 높은 지위에 이르도록 올렸다는 것을 기억하지 못하는가? 오, 비열한 악당이여! 네가 받은 이 모든 다양한 은총들을 인하여 영국으로 영국이 되지 못할 원인이 되려는가? 진실로 그렇도다. 네가 너의 아비 악마와 그의 부하 교황을 만족시키려고 그의 모든 졸개들과 함께 이빨과 발톱으로 영국 안에서 다시 번성하게 하려고 애쓰는구나! 가면 쓴 위선자와 두 얼굴을 한 비열한처럼 네가 오래 전에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의 무너뜨릴 수 없는 진리에 의해서 강요를 받아 바벨론의 저 추한 음녀와 그녀의 거짓으로 탈취한 힘과 권세에 반대하여 ‘참된 복종’이라는 제목의 네 책에서 썼었다. 그러나 이제 너의 영원한 수치가 되려고 네가 너의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며 다시 초교황주의자가 되고 있구나! 더구나 네가 어찌하여 캔터베리대주교 토머스 크랜머, 선한 아버지 휴 래티머, 그리고 저 박식하고 분별력 있는 사람 런던의 참 주교 리들리 박사의 피를 흘리려 하는가? 이 세 사람의 인자함, 진실한 교훈, 순전한 삶, 경건한 행보, 분별력 있는 조언이 영국 외에 여러 나라에 유명하게 알려진 것을 생각하지 않는가? 네가 정당하게 죽어 마땅한 때에 너의 생명의 보호를 위하여 힘쓰고 그것을 얻어냈던 사람들의 멸망을 네가 구하는 것이 수치스럽지 않는가?

“오, 너 사탄의 아들이여! 악마가 지배하는 마음 안에서 잔혹한 악의를 진정시키고 그의 죽음의 독을 씻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네가 잘 말하였도다. 너는 가인의 형제이고 배반자 유다의 친구로다. 그러므로 네가 아벨의 피에 주리고 그리스도 예수와 그의 영원한 진리에 주린 것 외에 아무 것도 할 수 없구나.”

그러나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그같이 악마의 자식들은 그들 자신의 불경스러움과 불경건을 드러내어 (잠자지 않는) 하나님의 진노가 그들에게 부어질 때에 모든 혀들이 하나님은 그의 모든 판단에서 의로우시다고 고백하고 인정하고 말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의도에서 잔혹한 폭군들이 얼마 동안 허용되고 용납되어 부귀와 영화 가운데 살며 육체와 관련하여 하나님의 성도들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명에 따라 그들의 격분을 저항하려고 나서는 사람들에 대해 이기고 승리를 거두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 그 다음 것과 이어지는 것을 보겠습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그의 제자들의 극심한 두려움과 근심을 제거하고 사라지게 하시려고 사용하신 도구와 수단은 그의 말씀뿐입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즉시 일러 가라사대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라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권능을 이해할 수 없는 본성적인 사람은 그렇게 큰 위험 가운데서 다른 즉각적인 위안을 바랐을 것입니다. 하늘이 열리게 하여 그 어둠 속에서 빛을 그에게 비추어 그리스도께서 그의 얼굴로 완전히 알려지게 하든지 아니면 바람과 바다의 격랑이 갑자기 중단되거나 모든 그들의 인식에 적합한 다른 기적이 일어나 그들로 자기들이 모든 위험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완전히 알게 하는 것 등입니다. 그리고 정말로 그리스도 예수님께 이 모든 것(아니 더 큰 일도) 행하는 것이 “내니 두려워 말라”라고 말씀하신 것만큼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극히 거룩한 말씀의 위엄과 효과적인 능력을 가르치실 의도를 가지시고 그는 그의 제자들의 크고도 엄청난 두려움을 평온케 하시기 위하여 다른 방도를 쓰지 않으시고 그것 자신의 위안의 말씀과 생생한 음성을 쓰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단 한번만 이루어진 일이 아니고 그의 교회가 극한 재앙, 황폐, 파멸 외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협착한 곤경에 있을 때마다 이루어지며 그때 교회가 받았던 첫 위안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 모세, 다윗 그리고 바울의 시련들과 시험들에서 볼 수 있듯이 그의 말씀과 약속의 수단에 의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그가 네 왕들을 (그의 후손과 직계를 나그네였던 그가 틀림없이 두려워했을 것입니다) 패주시킨 후 “내가 너의 방패니라” 곧 너의 보호와 방어라는 자신의 거룩한 말씀에 의해서 그가 하신 약속 외에는 아무 다른 방어를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같은 것을 이삭에서도 볼 수 있으니 그의 살아오던 거처에서 도망하여 거기서 굶주릴 수밖에 없을 때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는 이 약속 외에 다른 아무 위안이나 행동을 얻지 못했습니다.

야곱의 모든 여정들과 시험들 가운데서 같은 것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가 형 에서를 두려워하여 자기의 부친의 집을 떠났을 때 그가 라반의 집에서 돌아올 때 그가 자기의 아들들에 의해서 범해진 세겜사람들에 대한 학살을 인하여 가나안과 브리스 지역의 거주민들을 두려워할 때 그가 받은 보호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모세와 그의 아래 있던 고난받는 교회에서도 매우 분명합니다. 왜냐하면 모세 자신이 절망 중에서 대담하게 하나님을 탓하여 말합니다. “주여, 어찌하여 이 백성으로 학대를 당하게 하셨나이까? 어찌하여 저를 보내셨나이까? 제가 바로에게 와서 주의 이름으로 말함으로부터 그가 이 백성을 더 학대하며 주께서도 주의 백성을 구원치 아니하시나이다.”

모세의 이 같은 호소는 그가 얼마나 심하게 시험을 받았는지 그리고 그가 하나님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 드러냅니다. 곧 하나님께서 무능하여 자기 백성을 그러한 폭군에게서 건져낼 수 없거나 아니면 그가 변할 수 있고 자기의 약속들에 대해 공정하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와 같거나 이보다 더 심한 시험들이 그 백성을 공격했습니다. 왜냐하면 마음의 번민 가운데서 (우리가 전에 부분적으로 다루었던 것처럼) 그들은 하나님과 모세를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극한 곤경 중에서 그들을 위로하시려고 어떤 방도를 사용하셨습니까? 그가 곧바로 그 거대한 폭군 바로를 갑자기 죽이셨습니까? 아닙니다. 그가 천사들의 군대를 보내어 그들을 방어하고 건져내셨습니까? 그런 일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때로 전에 그들이 가졌던 약속들을 그들의 귀에 들려주고 주입시켜 주셨을 뿐입니다. 하지만 같은 것의 반복이 모세의 마음에 힘 있게 작용하여 괴로움과 절망이 사라졌을 뿐만 아니라 그가 담대함으로 불붙어서 두려움 없이 그가 왕에게 위협을 받고 쫓겨난 후에 다시 왕 앞으로 나아갔던 것입니다.

주님 안에서 사랑하는 이들이여, 제가 이것을 쓰는 것은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이 천지를 창조하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며 본성으로 어둠 가운데 행하는 이들의 발에 밝은 등불, 죄로 죽은 사람들에게 생명, 환란 가운데 있는 자들의 위로, 극히 약한 사람들에게 방어 탑, 그것을 즐거워하는 사람들의 지혜와 큰 행복이니 간단히 말해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이 효력 있고 힘이 있어서 그로 인하여 죄가 씻기고 죽음이 정복되고 폭군들이 제압되고 마지막으로 모든 비참의 근원자인 악마가 넘어지고 패배하는 것을 아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제가 쓰는 것은 여러분이 한때 들었고 제가 여러분의 위안이 되리라 믿는) 거룩한 말씀, 하나님의 지극히 복된 복음과 음성에서 이것을 알고 이제 이 어둠과 극심하게 격동하는 폭풍의 시간에 갈망하고 기도하여 여러분이 다시 한 번 여러분의 구주 그리스도의 이 사랑스러운 말씀,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를 들으시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여러분이 전에 고백한 그 복된 복음으로부터 하나님께서 여러분 이전에 자신의 이름을 위하여 고난당했던 다른 사람들에게 하셨던 것 이상 여러분에게도 자비로우실 것임을 확실히 알아서 위안을 가지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신속하게 이 두려운 어둠을 없애지 않으실지라도 그가 갑자기 이 폭풍을 잔잔케 하지 않으실지라도 그가 자신의 흔들리는 배가 가라앉지 않게 하실 것입니다.

형제들이여, 하나님의 진노가 바로에게 그의 난폭의 첫 해에 그에게 내리지 않았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악한 이세벨이 처음 우상숭배를 시작할 때에 개들이 그녀의 살과 뼈를 먹고 물어뜯지 않았지만 그들 중 아무도 마땅한 징벌을 피하지 못했고 그같이 하나님께서는 사탄과 그의 맹목적이고 극히 비열한 종들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고난 받는 교회를 보존하셨으니 영국 땅 안에서 이 큰 폭풍과 어둠 가운에서도 못하실 일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주님 안에서 사랑하는 이들이여, 다시 하나님의 약속들의 위로가 여러분의 지친 영들을 새롭게 하도록 하십시오. 때때로 여러분이 여러분의 귀 속에 공개적으로 선포되는 것을 들었던 것을 곰곰이 생각함으로써 은밀하게 단련하시고 각 사람이 그의 형제에게 충실한 설교자가 되십시오. 만일 여러분의 교통이 그리스도께 속한 것이면 확실히 여러분이 알기 전에 그가 오실 것입니다. 그의 말씀은 향기로운 냄새를 가진 기름이나 향기로운 꽃들과 같으니 흔들리거나 손대지 아니하면 냄새가 나가서 결코 곁에 선 사람들의 위로가 될 수 없으며 그것은 기름이 상자 안에 남아있거나 꽃이 손대거나 이동 없이 서 있거나 놓여있다면 그렇게 기쁨을 줄 수 없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기 전에 그의 제자들은 그들에게 결코 기쁨을 줄 수 있는 구주가 아닌 어떤 악한 영이라고 판단했다는 것을 주목하십시오. 그러나 그가 말씀하실 때 그의 목소리의 달콤한 냄새가 그들의 마음에 깊이 들어갔습니다. 그들이 “안심하라. 내니라”라는 이 말씀을 들었을 때 그들의 마음속에 어떤 위로가 있었겠습니까. 곧 “내가 너희를 멸망시키려고 온 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아니다. 내가 너희를 구하러 온 것이다. 너희 스승 나다. 정말로 너의 잘 아는 너희 선생 말이다. 너희가 내 목소리와 교훈을 아나니 너희가 내 양이기 때문이다. 너희가 지금 완전히 나라고 생각하지 않을지라도 너희가 내 일을 보았느니라. 너희에게 이 여정을 떠나라고 명한 것이 나다. 그러므로 너희의 고난의 때에 내가 너희에게 왔노라. 그러므로 두려워하지 말라. 이 폭풍이 그치고 너희가 구원을 받으리라.”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그리스도의 음성을 듣고 그것을 통해 그를 아는 것이 제자들의 마음에 어떤 위로가 있었는지 사람의 혀나 펜이 형용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극심한 시련의 때에 그리스도께서 함께 계시지 않아 보이는 때 육과 영 사이에 있는) 오랜 싸움과 갈등 후에 마침내 성령의 위안을 느끼는 사람들만이 증언하고 선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그리스도의 말씀이 그의 마음 안에서 내적으로 이루신 몇 외적인 표지를 제공합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주님의 음성을 들은 직후 그는 말합니다. “주여, 만일 주시어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여기서 그리스도의 음성이 베드로의 마음 안에서 무엇을 일으켰는지 볼 수 있으니 큰 폭풍의 잊음과 멸시뿐만 아니라 자신이 뒤따르는 위험을 전혀 염려할 수 없고 자신의 스승 그리스도의 권세, 힘, 능력이 커서 다만 아무 것도 그의 말씀과 명령을 거역할 수 없으리라고 확실하게 믿었던 대담함과 사랑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말합니다. “저더러 오라 명하소서.” 그는 말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저는 주의 명령에 대한 확신 이외 바라는 것이 없습니다. 만일 당신께서 명하시면 저는 순종하기로 다짐했습니다. 왜냐하면 분명코 주께서 그 말씀을 하신다면 물이 저를 이기지 못할 것을 제가 알기 때문입니다. 주께 가능한 무엇이든지 주의 뜻과 말씀에 의해서 제게 또한 가능합니다.”

그같이 그리스도께서는 베드로를 더 가르치시려고 그리고 그의 본에 의해서 우리를 가르치시려고 그의 청을 허락해 주셨고 그에게 오라고 명하셨습니다. 베드로는 급히 배를 떠나 거기에서 내려와 물 위를 걸어 그리스도께 갑니다. 그와 같이 베드로의 사실에 대해 풍족한 교훈이 많습니다만 저는 영국 내에 이 시기의 특징과 특별히 관련이 없는 모든 것들을 그냥 지나치려고 합니다.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때로 생명의 사신들이 죽음의 사신들로 판단을 받는다고 전에 말씀드렸는데 버림을 받은 자들에게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에게도 그러한 것이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예레미야가 예루살렘 성에게, 그리스도 자신께서 그의 사도들에게 그러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에게 영원히 머무는 영속되는 죄가 아니고 그들이 자기들의 목자의 음성을 알 뿐만 아니라 그들이 자기들의 생명을 무릅쓰고 그것에 순종하고 따르기를 열심히 힘쓰는 방식으로 사라집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하나님의 자녀들과 버림 받은 자들과의 특별한 차이이기 때문입니다.

전자는 자기들이 거짓 없이 받아들이는 그의 사신들에 의해서 말씀하시는 하나님께 순종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그렇게 하기를 때로 모든 세상적인 외양을 대항할 뿐만 아니라 사회 법규나 사람들의 예식을 대항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거대한 극한 속에서 그들이 기대를 넘어서는 위로를 받습니다.

후자는 항상 하나님의 사자들을 거역하며 그의 말씀을 미워합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큰 역경 중에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말씀의 임재를 그들에게서 거두시거나 그들이 큰 절망 중에 빠져서 하나님의 사신들이 그에게 파송될지라도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들에 의해서 위로를 받을 수 없고 아무리 완전하고 열매를 맺히게 할지라도 하나님의 참 사자들의 권고를 따를 수 없는 것입니다. 이에 관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성경 안에서 많은 분명한 증거들을 가집니다.

사울에 대해 하나님께서 그를 떠나셔서 그에게 선지자나, 꿈이나, 환상에 의해서 답을 주시지 않았던 것이 분명합니다.

유다 왕 아하스에 대해 그를 향하여 탄원했던 무수한 사람들에 의해서 품었던 큰 번민과 두려움 속에서 선지자 이사야가 파송을 받아 그의 대적이 그를 대하여 이기지 못하리라는 하나님의 약속에 의해서 그를 확신시켰습니다. 그리고 그것에 그를 견고하게 하려고 선지자는 그에게 하늘에서든지 깊은 곳에서든지 하나님의 징조를 구하라고 요구합니다. 그러나 그의 숙명적인 절망이 얼마나 컸던지 항상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무시했고 극히 비열하게 우상숭배로 자신을 더럽혀 아무 위안이 그의 마음에 들어갈 수가 없었고 필사적으로 시치미를 떼며 거짓된 변명으로 그는 하나님의 모든 제안들을 거절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시에 그 위선자를 (그 때문이 아니라 고난 받는 교회의 안전을 위하여 이루어진) 계속 접촉하셨을지라도 나중에 그가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없었습니다.

같은 것을 우리는 예루살렘 멸망 직전 유다의 마지막 왕 시드기야에 관하여 읽습니다. 그는 자기의 큰 두려움과 극한 근심 중에서 선지자 예레미야를 불러 은밀하게 자기가 갈대아인들이 성을 포위했을 때 나타날 큰 위험에서 어떻게 피할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선지자는 그에게 대담하게 말하여 만일 그가 자기의 생명과 성을 구하고 싶으면 자신을 바벨론 왕의 손에 맡기고 넘겨주라고 명했습니다. 그러나 그 불쌍한 왕은 그 선지자의 조언을 따를 은혜가 없었으니 그가 선지자의 교훈을 좋아한 적도 없고 그에게 어떠한 친구같은 호의를 보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심지어 하나님의 적들, 대제사장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왕에게 요구한대로 그 선한 선지자는 악하게 취급을 받아서 때때로 투옥되고 때로 사형 판결을 받았던 것입니다. 악한 우상숭배자들의 의도적인 무시의 극명한 증거는 같은 선지자 예레미야 안에 기록되고 언급되었으니 다음과 같습니다.

예루살렘 성이 불타고 멸망한 후 왕은 죄수로 끌려가고 그의 아들들과 고위 귀족들은 살해되고 하나님의 온전한 진노가 불순종하는 자들에게 부어졌지만 그 땅에 남아 그것을 차지하고 점령한 남은 자들이 선지자 예레미야를 찾아서 갈대아인들이 정하고 허락한대로 유다 땅에 남아있어야 할지 아니면 자기들이 도망하여 애굽으로 피신할지 자기들에 관한 하나님의 뜻과 의향을 알고자 했습니다. 이 자기들의 의무를 확인시키려고 그들은 선지자에게 하나님께 자기들을 위하여 기도해 주기를 청하며 굽어 살피셔서 자기들의 간청을 허락하시면 주 하나님께서 그에게 보여주시는 것으로부터 어느 것이든 어기지 않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같은 방식으로 하나님을 증인으로 삼아 주께서 그에 의해서 보이시는 무엇이든지 복종하겠다고 엄숙한 맹세를 했습니다. 그러나 선지자가 하나님의 영의 감동하심(과 그의 뜻의 확고한 계시와 지식)에 의해서 그들에게 그들이 있는 땅에 남아있으라고 명하며 만일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거기에 심으시고 자신이 그들에게 내렸던 모든 재앙에 대해 후회하시고 자신이 그들과 함께 하여 바벨론 왕의 손으로부터 그들을 건져내겠지만 만일 반대로 그들이 여호와의 말씀에 복종하지 아니하여 그의 명령에 반대하여 자기들이 애굽으로 들어가 전쟁이나 양식의 핍절에 대한 두려움 없이 안식과 풍족함 가운데 살리라고 생각하면 그들이 두려워하는 모든 재앙들이 그들을 따라가서 그들을 붙잡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선지자가 말하기를) 애굽으로 완고하게 가서 거기 머물려고 하는 모든 사람들이 칼에 굶주림에 혹은 전염병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제가 여러분에 묻는 것은 하나님의 선지자가 그들에게 하나님의 이 분명한 선언과 뜻을 그들에게 전했을 때 그 답이 무엇이었습니까? 본문이 그것을 선언하여 말합니다. “네가 거짓을 말하는도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너희는 애굽에 거하려고 그리로 가지 말라고 너를 보내어 말하게 하지 아니하셨느니라. 이는 네리야의 아들 바룩이 너를 꼬드겨서 우리를 대적하여 갈대아 인의 손에 붙여 죽이며 바벨론으로 잡아가게 하려 함이니라.” 그같이 그들은 하나님의 권고를 거부했고 자기들 자신의 망상을 따랐습니다.

여기서 이 백성 안에서 큰 완악함과 무지함을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주께서 이 경건한 선지자 예레미야에 의해서 전에 말씀하셨던 아무 것도 헛되이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 자신의 눈이 그가 위협했던 재앙들이 그가 전에 말했던 모든 점들에 있어서 일어나는 것을 보았던 것입니다. 정말로 그들이 생각과 태도에 있어서 아직 어렸고 싱싱했지만 (왜냐하면 예루살렘을 소화시키고 태웠던 화염과 불이 아직 꺼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당시 말해진 그의 위협들을 믿을 수 없었고 그들의 큰 부요와 안전을 위하여 주어진 풍요로운 조언을 따를 수 없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즐거워한 적이 없었고 자기들의 이전 우상숭배를 회개한 적이 없고 그 선지자의 44장에 나타나는 것처럼 그것을 지속하고 좋아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들과 그들의 아내들이 온갖 우상들이 가득한 애굽에 머물며 거기서 비난과 책망 없이 자기들이 하나님의 거룩한 법도와 선지자들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것들로 자기들의 배를 채우고 싶었던 것입니다.

이것들에 대해 쓰면서 떠오르는 것은 그 순전하고 극히 경건한 왕 에드워드의 죽음 이후 그 극히 불행하고 악한 여자의 권세를 세우려고 (저는 하나님의 진노 가운데 지금 다스리고 있는 그녀에 대해 말하는 것입니다) 큰 소요가 영국 안에 있을 때 아머셤이라는 버킹엄셔의 한 마을에서 큰 회중 앞에서 탄식하는 마음과 눈물어린 눈을 가지고 같은 요지를 다루면서 저는 다음의 선언을 했던 것입니다.

“오 영국이여, 이제 하나님의 진노가 너를 향하여 불붙도다. 이제 그가 자기의 진실한 선지자들과 사자들을 통하여 오랫동안 경고하신 대로 벌하기 시작하셨고 머리 없는 몸통처럼 명예 없이 너를 남기셨도다. 그리고 이것은 단지 커질 것으로 보이는 근심의 시작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나는 한 영국인의 마음, 혀, 손이 다른 데를 향하고 있으며 영토 전체에 있는 분열이 다가올 황폐의 확실한 표지인 것을 감지하기 때문이다.

“오, 영국, 영국이여! 너희 국가가 바다에 항해하는 배 같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만일 너희 선원들과 지도자들이 서로 삼키면 네가 빠른 시간 안에 침몰을 당하지 않겠는가?

“오, 영국, 영국이여! 아! 이 재앙들이 너에게 부어진 것은 네가 너의 부드러운 찾아오심의 극히 행복한 때를 알지 아니하려 함 때문이라. 그러나 네가 너의 하나님의 목소리를 순종하고 그의 거룩한 말씀에 순종할 뜻이 있는가? 진실로 만일 네가 그렇게 하면 너는 그의 보시기에 긍휼을 입겠고 너의 국가의 입지가 보존되리라.

“그러나, 오 영국, 영국이여! 만일 네가 완고하게 애굽으로 돌아가려고 한다면 곧 만일 네가 (늘 네로이상 그리스도에게 상당한 적인 황제와 같이) 우상숭배를 유지하고 진전시키는 군왕들과 혼인, 동맹, 연맹을 맺으면, 만일 그러한 군왕들의 의향과 친선을 위하여 네가 너의 옛 가증한 것들, 그때 교황제도 아래 사용되었던 그것들로 돌아가면 오, 영국이여! 네가 찾았던 사람들의 호의의 수단에 의해서 그리고 그리스도에게서 떨어져 적그리스도를 섬기도록 초래했던 사람들에 의해서 재앙을 당하며 파멸에 이를 것이다.”

이와 이보다 많은 것을 제 마음의 비통함 가운데 아직 증언할 수 있는 청중들 가운데 하나님께서 제가 선포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제가 그때 가장 두려워했고 또한 제 혀가 말한 일(곧 참된 종교의 전복과 이방인들을 끌어들여 그 땅을 다스리는 것)이 사람들의 계획들과 결정들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을 봅니다. 만일 그들이 (사람들에 의해서 결정된 대로) 그들이 진행하고 이루면 그때는 확실히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며 완고하게 애굽으로 돌아간 저 이스라엘사람들이 재앙을 받아 죽었던 것 같이 영국이 전에 그의 선지자들에 의해서 경고한 것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옛 허물들의 참되고 거짓 없는 회개를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크신 자비를 인하여 비느하스와 엘리야와 예후를 일으키셔서 가증스러운 우상숭배자들의 피가 하나님의 진노를 가라앉게 하여 그것이 전체 무리를 사르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아멘.”

그러나 우리의 문제로 돌아갑니다. 선례들로부터 하나님의 영원한 진리와 은혜를 업신여기는 사람들은 자기들의 시련 중에서 하나님의 사자들에 의해서 위안을 받을 수도 없고 아무리 유익한 하나님의 권고라도 따를 수 없는 것이 분명합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자기들의 허영 가운데 그들을 넘기셔서 그들로 그 가운데서 방황하도록 하여 그 자신들의 파멸에 이르게 됩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지극히 거룩한 말씀을 존중하는 사람들은 (앞에 말한바) 진리의 힘과 덕에 의해서 이끌림을 받아 아무리 어렵든지 자기들의 애정에 아무리 맞지 않고 거슬릴지라도 하나님께서 명하신 것을 믿고 따르고 순종합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하는 자들에게 쏟아질 때에 놀랍게 보존됩니다. 그리고 이것은 하나님의 명령에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떠났던 아브라함 안에서 매우 분명하니 듣거나 읽은 대로 행하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또 모든 상황을 거슬러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들을 믿는 데서 그리고 아브라함이 모든 아버지로서의 사랑과 본성적인 애정을 거슬러 자신의 아이를 바침에 있어서 나타납니다. 같은 일이 하나님의 말씀의 명에 따라 명령을 받은 대로 폭군들 앞에 담대히 나타나 거기서 그들에게 자기들의 메시지를 전한 모세, 사무엘, 엘리야, 미가야 그리고 다른 선지들 안에서 언급됩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이 이러한 모범들은 독특한 사람들 안에서 행해졌기 때문에 일반 사람들에게 전혀 관련이 없다고 주장하지 못하게 하며 이 반론에 답하기 위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이 단번에 많은 사람들 안에서 이루어진 것을 고려하고자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황금 송아지를 만들고 그렇게 우상숭배에 빠졌을 때 모세는 산에서 내려와 그들의 가증한 것 (그들이 우상에게 돌린 명예)과 자기들의 귀고리와 보석을 빼 자기들의 책망과 수치에 넘긴 백성을 보고 열심과 분노와 격분이 불붙어서 먼저 그는 계명의 돌판들을 깨뜨렸습니다. 그때 그는 그들의 송아지를 쳐서 가루로 만들어 그들에게 주어 마시게 했고 그들로 자기들의 더러운 위로 자기들이 하나님으로 예배했던 것을 받았다는 것을 이해시켰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는 하나님께 속한 각 사람은 자기에게 나아오라고 명령했습니다. (본문이 말하기를) 레위의 모든 아들들이 그에게 왔고 그들은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각각 허리에 칼을 차고 진 이 문에서 저 문까지 왕래하며 각 사람이 그 형제를, 각 사람이 그 친구를, 각 사람이 그 이웃을 도륙하라 하셨느니라. 레위 자손이 모세의 말대로 행하매 이 날에 백성 중에 삼천 명 가량이 죽인 바 된지라.”

본 역사에 의해서 한 사람의 입에 의해서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이 단번에 본성에 거슬러 많은 사람들 안에서 효력이 있어서 그들로 인척이나 혈통의 가까움에 전혀 상관하지 않고 하나님의 진노의 집행자들이 되도록 했던 것이 분명합니다. 또한 그들의 그렇게 잘 행함이 하나님의 대사인 모세를 기쁘게 하여 그는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각 사람이 그 아들과 그 형제를 쳤으니 오늘날 여호와께 헌신하게 되었느니라. 그가 오늘날 너희에게 복을 내리시리라.” 마치 모세는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너희 아비 레위가 자신의 맹목적인 격분으로 세겜사람들을 죽임으로 자신의 손을 욕되게 하고 더럽혀서 그의 부친 야곱으로 하여금 그의 마지막 유언에서 그의 극히 크고 불경건한 열심을 책망하고 비난하고 저주하도록 했지만 이 일에서 너희가 혈통과 본성과 애정보다 하나님의 명령을 앞세워 그 책망과 저주 대신 너희가 축복과 평안을 얻었느니라.”

많은 사람들 가운데 역사하는 하나님의 말씀의 유사한 힘과 덕이 선지자 예레미야 안에서 읽을 수 있으니 하나님의 진노가 다가오고 예루살렘 성이 함락될 것을 감지한 그는 대담하게 그의 공적인 설교에서 외칩니다. “이 성에 거주하는 자는 칼과 기근과 염병에 죽으려니와 너희를 에운 갈대아 인에게 나가서 항복하는 자는 살리니 그의 생명은 노략한 것 같이 얻으리라.” 백성들로 하여금 그들의 재산과 요새로부터 자기들 조국의 왕, 부자 시민들, 용감한 병사들에 대한 복종과 방어를 떠나 자신들을 어떤 종류의 저항도 없이 자기들의 적들인 이방인들의 손에 자신들을 맡기라고 명하는 이것은 거짓되고 기만적이며 불경건한 설교로 보일 수 있었습니다. 어느 세속적인 사람이 그 선지자의 이러한 주장을 극히 어리석고 거짓되다고 판단하지 않으려 했겠습니까? 하지만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생명을 주시기로 정한 사람들의 마음들 안에서 이 설교는 매우 효과적으로 역사하여 예루살렘의 많은 사람들이 자기들의 왕, 자기들의 도시, 재산, 친구들을 버리고 선지자의 조언을 따랐습니다. 왜냐하면 예레미야가 시드기야 왕이 느부갓네살의 손에 자신을 맡겨야 한다고 조언했을 때 그 왕의 답변에 의해서 그것을 볼 수 있는데 그는 말했습니다. “시드기야 왕이 예레미야에게 이르되 나는 갈대아 인에게 항복한 유다인을 두려워하노라.” 여기에서 그가 자기의 적들보다 더 두려워했던 것은 많은 사람들이 자기를 떠나는 것이었음이 분명합니다.

더 많은 증거들을 모아서 어떻게 사람에 의해서 전해진 하나님의 말씀이 큰 무리의 마음 안에서 능력 있게 역사했는지 보여드릴 수 있습니다. 니느웨 사람들의 마음 안에서 요나의 설교에 자기들의 이전 종교, 생활방식, 삶을 책망했습니다. 삼천 명의 사람들의 마음 안에서 (그리스도의 승천 후) 베드로의 첫 설교에 자신들의 범죄들을 인정하고 회개하고 즉시 세례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전제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자신의 택한 자들을 그것에 따라 세속적인 상황에 거슬러, 본성적인 애정에 거슬러, 모든 사회 법규들과 제도들을 거슬러 모으시고 자기 사역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순종하는 사람들은 정당한 상과 보상이 결코 없지 않았다는 것을 충분히 입증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정당한 심판이 불순종하는 자들에게 진노를 내릴 때 선지자의 목소리에 순종했던 사람들은 은총과 은혜를 입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제 간략하게 요점들에 의해서 베드로의 나머지 행동과 그리스도의 그들에 대한 자비로운 구원을 다룰 것이니 그것은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에 의해서 감당했던 시련의 끝입니다.

우선 베드로는 강한 바람을 보고 두려워했고 그가 가라앉기 시작할 때 그는 “주여, 저를 구원하소서”라고 외쳤는데 세 가지를 주로 주목해야 할 것입니다.

첫째 하나님의 택하신 자의 이 두려움은 어디서 오는가?

둘째 그들이 역경 중에 지치고 넘어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셋째 이 두려움과 가라앉음의 때에 그에게 있었던 것은 무엇인가?

첫째 분명한 것은 베드로가 시선을 그리스도께 고정시키고 그리스도의 음성 외에 다른 어떠한 것에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던 한 그는 대담했고 두려움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강한 바람을 보았을 때 (바람이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큰 폭풍과 그 바람에 의해서 일어나 움직이는 바다의 파도가 보였습니다) 그가 두려워하며 틀림없이 그의 마음 안에서 배 안에 남아있어서 그리스도께서 자기에게 오시도록 했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의심이 일어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폭풍과 바람의 격동이 너무 심해서 그가 그리스도께 갈 수 없었고 그래서 크게 두려워했습니다. 이것으로부터 분명한 것은 우리의 배를 떠나 베드로와 함께 바다의 폭풍을 통과하여 그리스도께 가려고 하는 우리의 두려움의 유일한 원인은 우리에게 자기에게 오라고 명하신 분의 전능한 능력보다 우리의 여정에 있는 위험들과 방해들을 더 많이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모든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과 뽑으신 자녀들에게 공통적인 허물이니 그들이 자기들을 방해하며 하나님께 대한 순종으로부터 물러서도록 하는 것으로 나타나는 큰 시련들을 볼 때마다 두려워하며 하나님의 권능과 선한 뜻에 대해 의심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자기의 아내를 부인했을 때 이러한 두려움이 그에게 닥쳤습니다. 모세가 이 폭풍을 보았을 때 그는 자신이 하나님의 사신이라는 것을 거절했습니다. 그리고 히스기야의 심한 불평은 그가 선지자의 약속들보다 산헤립의 거만한 목소리와 큰 권능을 더 믿었고 생각했고 바라보았다는 것을 드러냅니다.

제가 이러한 의도에서 이것을 기록하는 것은 영국 땅 안의 이 최근의 극히 심한 폭풍이 여러분에게서 잠시 그리스도의 임재를 취해 가서 여러분이 전에 여러분이 보았던 이가 그리스도인지 아닌지 의심했을지라도, 여러분으로 하여금 그리스도에게서 몰아내려는 이 거슬리는 바람의 거셈이 여러분의 귀를 메워서 여러분이 거의 그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오, 나의 백성아. 바벨론에서 떠나라!”라고 외치실 때 자기에게 오라고 여러분에게 명하신 이가 그였음을 거의 잊었을지라도, 이 격동하는 폭풍이 거의 모든 것을 잊어버리게 하는 큰 두려움을 여러분의 마음 안에 일으켰을지라도,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낙심하지 마십시오. 그러한 허물들이 여러분 전에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에게도 있었던 일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완고하게 계속하지만 아니하면 여러분은 자비와 은혜를 만날 것입니다. 오직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모든 훼방을 무시하는 것이 여러분의 의무였고 여러분의 고백에 합당한 것이었지만 그러한 완전함은 항상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며 자신이 가라앉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이 복이 있는 것입니다.

큰 역경의 때에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이 낙심하고 가라앉기 시작하는 이유는 베드로에게서 볼 수 있듯이 두려움과 불신입니다. 왜냐하면 그가 위험을 두려워하지도 않고 그리스도의 말씀을 불신하지도 않았던 동안은 물들이 (그들의 본성 위로 그리고 거슬러서) 마치 마르고 딱딱하고 확고한 땅인 것처럼 그의 발에 복종하고 섬겼습니다. 그러나 그가 낙심하고 두려워하기 시작하자 그가 가라앉기 시작했으니 살아있는 믿음이 사람으로 담대하게 하고 우리로 본성에 피할 수 없는 위험들을 통과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칩니다. 그러나 믿음이 떨어지기 시작할 때 사람은 앞에서 열거한 역사들 가운데 볼 수 있고 선지자들 가운데에 분명한 것처럼 모든 위험 가운데 가라앉기 시작합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그의 믿음의 열정 가운데 아합 왕 앞에 나아가 불이 하늘에서 내려 그의 제물을 태우도록 허락을 받았으며 그로 인하여 그는 매우 담대해져서 그 왕 앞에서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고 그의 거짓 선지자들을 죽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같은 엘리야가 저주받은 이세벨의 반대와 위협을 듣고 악한 여자의 분노가 어떤 이성적인 방도에 의해서 가라앉혀질 수 없다고 생각하며 그가 폭풍을 보았고 그것을 두려워했고 그는 달아날 준비를 했으니 그는 가라앉기 시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 의심하고 따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니 그것은 어리석음과 범죄를 범하지 않고는 결코 인생에 의해서 행해질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예레미야 안에서 같은 것과 다양한 더 많은 것을 봅니다.

그러나 이러한 질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베드로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미리 알고 계셨다면 왜 그로 하여금 자기의 배에서 내리지 못하게 하시지 않았느냐? 아니면 왜 그가 그를 믿음에 견고하게 하여 그가 의심하지 않게 하시지는 않으셨는가?”

그것에 대해 이렇게 답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이 일에 대하여 아무 이유를 댈 수 없지만 그 일 자체가 충분한 이유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모든 일들에 대한 이유를 대실 의무가 없는 그의 기쁘신 뜻이었다는 것이 충분한 답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만일 우리가 베드로가 부르심을 받았던 직무에 대해 그리고 어떤 과실들이 그에게 남아있었는지 진지하게 유의해 본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이 일과 베드로의 가라앉음의 지극히 정당하고 절실한 이유들을 발견할 것입니다. 베드로가 그리스도의 영광을 향한 열심과 열정, 그리고 그의 명령들에 순종하려는 신속함과 돌진성 같은 많은 장점들을 가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오랜 지속 가운데 베드로에게 그로 그리스도에게 죽지 말라고 설득하게 작용했던 명예와 세속적인 안락에 대한 욕구가 있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그에게 자만과 주제넘음과 자신을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 주제넘음과 자신의 힘에 대한 헛된 믿음은 만일 그것이 교정되고 부분적으로 없어지지 아니하면 그가 결코 그리스도의 양떼를 먹이기에 적합하거나 합당하지 않게 될 것이었고 그러한 죄들은 그것들이 느껴지고 알려지고 고백되기까지는 완전하게 교정되고 고쳐질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의심의 여지없이 우리의 본성은 아주 교만하여 그것이 그것 자체에 대한 경험에 의해서 시험을 가질 때까지는 그 자체의 연약함을 알거나 고백하려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베드로에 의해서 이 폭풍 이후 오랫동안 매우 명백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제자들에게 “오늘 밤 너희가 다 나로 인하여 실족하리라”라고 말씀하실 때 베드로는 당돌하게 자랑하며 말했던 것입니다. “가로되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나이다. 주여 내가 주와 함께 옥에도, 죽는 데도 가기를 준비하였나이다.”

이것은 자기의 모든 형제들을 멸시하여 말하는 대담한 건방짐이며 거만한 약속이니 그리스도의 권고에 의해서 거기로부터 그가 낮아질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그가 자기를 부인하리라는 것을 보여줄수록 그는 마치 모든 진리의 원천이신 그의 스승 그리스도 아니 진리 자체께서 시끄러운 거짓말을 하는 것처럼 더 대담하게 반대의 것을 주장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가 인간 본성의 연약함이 무엇이며 믿음의 빈약함과 약함이 무엇인지 심지어 계속 그의 하늘의 교훈들을 들었으며 매일 그의 놀라운 기적들을 보았으며 그들 스스로 그의 많은 가르침들을 들었고 또한 많은 일들에 있어서 그를 따랐고 순종했던, 그의 주요 사도들인 사람들조차도 경험으로 입증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만일 베드로가 믿음의 빈약함과 약함을 자기 안에서 입증하고 실감하지 못했다면 그는 올바르게 하나님의 무한하신 선하심을 찬양하고 그의 값없는 자비를 받아들이지도 못했고 그가 그리스도의 약한 양들과 여린 어린 양들에 대한 목자가 되기에 적합하고 합당하지 못했으며 교황주의자들이 자기의 자유의지에 대해 하는 것처럼 자신의 힘을 주제넘게 자랑하는 자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자기들보다 일천 배나 더 경건하고 큰 학식 있는 모든 사람들을 비난하고 무시하고 있는 거만한 교황주의자들처럼 자기의 약한 형제들의 자만한 비난자와 멸시자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제넘은 거만함과 믿음의 빈약성과 약함을 교정하고 알리기 위하여 베드로는 한번 가라앉고 세 번 극히 수치스럽게 자신의 주를 거부하고 부인하도록 용납된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 자신의 약함에 대한 지식에 의해서 그가 더 다른 사람들로 그것에 대해 교훈할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며 또한 그가 하나님의 값없는 은혜와 능하신 구원을 더 크게 높이도록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베드로의 바다 속에 가라앉음으로부터 (그가 나중에 그의 스승 그리스도를 부인하게 되는 것은 알려지지 않은 지식이었고 사적인 훈계였습니다) 만일 우리의 시련과 극한 위험의 때에 우리가 베드로와 같이 기도하면 베드로처럼 구원을 받을 것이며 만일 우리가 그가 한 것처럼 우리의 그리스도를 부인한 것을 탄식하면 그리스도의 손에서 그가 찾은 동일한 은혜와 호의를 찾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세 번째 요점을 다루려고 하는데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에게 그들의 극히 큰 두려움과 위험 가운데 이러저러한 수단에 의해서 고난 받는 사람이 두려움이나 위험 가운데서 즉시 그것을 감지하지 못할지라도 그 자체를 드러내는 믿음의 작은 불꽃이 남아있다는 것입니다. 여기 베드로 안에 매우 분명하고 명백합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가라앉는 것을 알고 그는 “주여, 구원하소서”라고 외쳤습니다. 그 말은 그의 고난 받고 심하게 두려워하는 마음 안에 감춰진 생생하고 살아있는 믿음의 선언이었으니 그 특성은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는 것입니다. 곧 베드로의 말이 자신이 했다고 증거하는 것처럼 모든 상황이나 가능성을 거슬러 도움과 구원을 바라는 것입니다. 그가 단지 본 것은 자기를 삼킬 것 같은 격동하는 바다였습니다. 그는 자신이 몸으로는 가라앉고 마음으로는 심하게 흔들리는 것 외에 아무 것도 느끼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주여 구원하소서”라고 외쳤으니 그 말은 첫째로 그가 그리스도의 능력이 자신을 구원할 수 있음을 알고 있다는 것을 드러냅니다. 왜냐하면 무능하여 도울 수 없다는 것을 자신이 알고 있는 사람에게 그러한 도움을 구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극심한 위험 가운데서 기도로 그리스도의 도움을 구하는 것은 또한 베드로가 그의 은혜로우신 선함을 통하여 구원을 받으리라는 어떤 소망을 가졌다는 것을 보여준 것입니다. 왜냐하면 극한 위험 가운데 사람의 마음이 하나님의 자비에 대한 소망 없이 그에게 도움을 구할 수 있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의 큰 위험 가운데서 베드로는 그리스도의 명령에 따라 자기의 배를 떠났음에도 그리스도를 원망하지 않으며 그리스도께 아무런 잘못이나 비난을 돌리지 않는 것을 주목해야 합니다. 그는 “제가 당신의 계명을 순종한 것을 아시고서 왜 저로 가라앉지 않도록 하시지 않습니까?” 말하지 않습니다. 더구나 베드로는 그리스도의 도움만을 구하고 있으니 그는 위기에서 도우실 수 있고 도우시려고 하신다는 것을 확신했습니다. 그는 아브라함, 야곱, 모세, 사무엘, 다윗을 부르지 않았고 다른 어떤 족장들, 선지자들, 세상을 떠난 성도들을 부르지도 않았고 배 안에 있던 다른 동료들도 부르지 않았고 오직 자신에게 배를 떠나라고 명하신 그리스도만 불렀던 것입니다.

이 모든 것들은 함께 고려할 때 베드로는 이 그의 극심한 두려움과 위험 가운데서 (그 당장의 위험 가운데서 위로도 위안도 느낄 수 없었지만) 믿음의 불꽃을 어느 정도 가졌다는 것을 드러냅니다. 왜냐하면 이 전제들이 그가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는 틀림없는 표지들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다음 것을 살펴보겠습니다.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저를 붙잡으시며 가라사대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그리고 그들이 배에 오를 때 바람이 그쳤습니다. 배에 있던 이들이 그에게 와서 절하며 “가로되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배는 곧 저희의 가려던 땅에 이르렀더라.”

여기서 먼저 주목해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는 항상 진실하게 자기를 부르는 자들에게 가까이 계시고 그들을 구원하실 뜻을 가지고 계시기에 두려움도 위험도 그의 경건한 손을 방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가라앉고 있었고 당장의 죽음 외에 아무 것도 보지 못했지만 그리스도의 손이 그를 막았습니다. 베드로에게 그의 극심한 위험 가운데서 보이게 공적으로 행해진 그 일은 그리스도의 거룩한 교회에 그리고 모든 시대에 그리스도의 신비로운 몸의 택함을 입은 지체들에게 보이지 않게 은밀하게 행해집니다.

하나님의 손이 모세와 에스더의 날에 이스라엘이 거의 절망에 빠져있을 때 자신의 백성을 구하심에 있어서 얼마나 가깝고 신속했는지 역사들이 증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자들 사이에 있던 다니엘에게, 고래 뱃속에 있던 요나에게, 감옥에 있던 베드로에게 얼마나 가까이 계셨는지 성경에서 또한 매우 명백하게 드러납니다. 얼마나 갑자기 모든 기대를 뛰어넘어 다윗이 여러 번 사울의 횡포로부터 건짐을 받았는지 그의 마음이 고백했고 그의 펜으로 쓰게 했고 혀로 노래하게 했으니 “저가 높은 곳에서 손을 펴사 나를 붙잡아 주심이여 많은 물에서 나를 건져내셨도다.”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여러분의 귀를 세우고 여러분의 마음으로 우리 하나님이 변하실 수 없는 것 같이 그의 은혜로운 손이 이날에 짧아지지 않으시리라는 것을 이해하게 하십시오. 우리의 두려움과 위험이 크고 우리에게 불어대는 바람은 심하고 크며 우리가 깊은 곳에 빠질 것 같습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진실하게 그 위험을 알고 구해 주시기를 구하면 주님의 손이 적들의 칼보다 더 가까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베드로에게 내리신 엄한 책망은 우리에게 하나님께서는 그의 택하신 자들의 잘못들을 발림말하거나 숨기시는 것이 아니라 드러내셔서 범죄자들로는 회개하게 하며 다른 사람들로는 비슷한 잘못들을 피하도록 하십니다.

그리스도께서 베드로에게 믿음이 적다고 하신 것은 (우리가 앞에서 주목했던 대로) 베드로가 전적으로 믿음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그가 약해졌거나 자기의 믿음에 있어서 확신이 없었음을 보이고 드러냅니다. 왜냐하면 “올리고피스토스”라는 헬라어 단어가 그런 뜻을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교훈을 받아야 할 것은 이 세상의 폭풍들을 지나 그리스도께 감에 있어서 처음에 매우 열정적인 믿음뿐만 아니라 끝까지 지조를 필요로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말씀하셨고 바울은 “경기하는 자가 법대로 경기하지 아니하면 면류관을 얻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에 대한 회상이 우리로 명심하게 하는 것은 가장 열심 있는 사람(과 그리스도에 대한 고백에 있어서 오래 지속한 사람들)이 모든 때에 확고하게 서지 못하고 많은 위험들에 처하고 사도가 우리에게 가르쳐 “선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말한 바와 같이 자신의 연약함을 두려워해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만일 그렇게 열심 있게 시작한 베드로가 그리스도께 오기 전에 약해졌다면 그러한 열심을 결코 찾을 수 없었던 우리는 얼마나 더 두려워해야 하겠습니까? 분명코 우리는 극히 악한 상황을 떨며 두려워해야 하고 우리 자신의 연약함을 알고서 사도들처럼 “주여, 우리의 믿음을 더하소서”라고 끊임없이 기도해야 합니다.

베드로에게 “왜 의심하였느냐?”라고 물으신 그리스도의 요구와 질문은 그 자체 격렬함을 담고 있는데 마치 그리스도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왜 너는 내 능력이나 내 임재나, 내 약속들이나 내 선한 뜻에 대해 의심하느냐? 만일 내 권능이 너를 구원하기에 충분하지 않았다면 나는 폭풍의 바다를 지나서 너에게 오지 않았을 것이고 네가 내게 오기 시작했을 때 물로 너에게 순종하도록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만일 나의 선한 뜻이 너와 네 형제들을 구원하는 것이 아니었더라면 내가 너를 부르지도 않았을 것이고 폭풍으로 너희를 삼켜버리도록 내버려두었을 것이다. 그러나 네 눈이 내가 함께 있는 것을 보았고 네 귀가 내 음성을 들은 것을 생각할 때 특별히 그것을 알고 내 명령을 순종했던 너 베드로야, 왜 의심하였느냐?”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만일 동일한 요구와 질문이 우리의 책임으로 놓인다면 우리는 베드로가 가졌던 것보다 적은 변명의 구실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큰 폭풍이 자기와 그리스도 사이에 일어나리라는 것을 들어보지 못했노라고 주장할 수 있었지만 우리는 그것을 정당하게 주장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그의 말씀의 밝음에 의해서 우리에게 나타나셨고 자신의 생생한 음성으로 우리를 부르셨던 때 이후 그는 계속 우리의 귀에 박해와 고난이 우리가 고백한 말씀을 따르리라고 계속 알리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날들이 지금 온 것입니다. 아, 그렇다면 우리가 이 폭풍을 지나 그리스도께 가는 것을 의심해야 합니까? “오, 주님, 붙들어 주옵소서. 더 빠지지 않게 해 주옵소서!”

베드로가 믿음에 있어서 약했고 그러므로 매우 심하게 책망을 받아 마땅했지만 그리스도께서는 그를 바다 가운데 버려두지 아니하시고 오래 그 두려움과 폭풍이 지속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먼저 그들이 같이 배에 들어갔고 그 후에 바람이 그쳤으며 마지막으로 배가 더 이상의 지체 없이 그들이 가려고 애썼던 장소에 도착했습니다.

오, 참고 이 주님의 구원을 바라는 사람들은 복되고 행복합니다. 격동하는 바다가 그들을 삼키지 못할 것입니다. 그들이 약해졌지만 그리스도 예수께서 그들을 폭풍의 바다 가운데 남겨두지 아니하시고 갑자기 자신의 능한 손을 펼치셔서 그들을 배 안에 그들의 형제들 사이에 두실 것입니다. 곧 그가 그들을 그의 택하신 자들과 고난 받는 교회의 수에 이끄실 것이니 세상 끝날까지 그들과 함께 계실 것입니다.

그의 임재의 존엄이 군주들, 고위사제들, 왕들, 세상의 폭군들의 마음 속에서 심하게 불어서 그들이 함께 주를 향하여 공모하여 그의 기름부으신 자 그리스도를 대항하는 이 몹시 사나운 바람을 잠잠하게 하실 것입니다. 이들에도 불구하고 그가 안전하게 자신의 심하게 시달리는 양떼를 인도하시고 나르시고 데려가셔서 그들의 위하여 고생한 생명과 안식에 이르게 하실 것입니다.

말씀드리는 것은 때로 그들이 자기들의 여정에 지쳤을지라도, 믿음에 있어서 약함이 그들로 가라앉도록 허용했을지라도 그리스도의 손에서 그들은 떨어질 수 없으니 그가 그들을 빠지지 않도록 하시며 깊음이 그들을 삼키도록 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오히려 자신의 이름의 영광을 위하여 그가 반드시 건지실 것이니 그들이 자신의 책임, 보호, 보존에 맡겨졌고 그러므로 그가 자기 아버지로부터 받은 사람들을 죄로부터, 죽음으로부터, 악마와 지옥으로부터 반드시 보존하시고 지키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약속들에 대한 회상이 저 자신의 마음에 어느 혀로나 펜이 표현할 수 없는 위안의 근거입니다. 하지만 아마 이 폭풍 속에서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 중에서 하나님의 택하심과 보호에 대한 묵상들로써 위로를 받지 못하고 때로 대담하게 그리스도의 진리를 고백했지만 지금 자기들의 습관대로 하던 우상숭배로 돌아갔으며 자기들의 지식과 양심을 거슬러 두려움에 빠졌으며 우상에게 구푸리고 직접 찾아가 그것을 지속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시점에 있는 그들은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들이 그렇게 무섭게 타락하여 자기들의 머리를 부인하게 되고 같은 것에 오래 머물 수 있느냐고 의심하기 시작합니다. 이런 의문으로부터 그들은 비탄 속에 들어가고 비탄으로부터 지옥문들과 절망의 항구들로 빠져들기 시작합니다.

그러한 사람들의 비탄과 두려움은 아주 정당하다고 저는 인정합니다. 왜냐하면 아, 잠시뿐인 이생을 사랑하여 사람들 앞에서 그리스도 예수와 그의 이미 알고 의심할 수 없는 진리를 부인하는 것이 얼마나 두려운 일인가요!

하지만 하나님과 모든 경건에 대한 완고한 멸시자들이 아닌 사람들에게 저의 빈약한 권면을 드리고 싶은 것은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에 의해서 자신들에게 형벌의 무서운 판결을 선고하시게 하기보다 자비에 호소하고 하나님께서 불신 아래 있는 사람들을 포함하여 모든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푸실 수 있으며 주님께서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고 지옥으로 끌어내시기도 하시고 다시 올리기도 하신다는 것을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 저의 권면에 의해서 제가 혐오스럽게 자신의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는 사람들을 정당화시키거나 자기들의 매일의 참석으로 그 가증한 우상을 지속하는 사람들에게 발림말한다고 어떤 사람도 생각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그랬다면 저는 단지 눈먼 자를 영원한 파멸로 곧바로 인도하는 눈먼 인도자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제 마음의 비탄과 울음을 아십니다. 왜냐하면 되돌아가는 사람들에 대해 제가 매일 듣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제 권면의 이유는 어떤 사람의 양심이 매우 예민하여 자기들의 두려움으로 괴롭힘을 받고 근심으로 상처를 받으며 혹은 어떤 점에서 넘어졌다고 느낄 때마다 자신들의 믿음이 소멸되었고 하나님의 자비를 영원토록 받기에 합당하지 않다고 판단하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제가 말하는바 제 권면은 악의와 결심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약함과 부족함에 의해서 넘어진 사람들을 향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이들은 그리스도의 모든 사도들이 그에게서 도망했으며 자기들의 마음으로 그를 부인했다는 것을 이해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또한 아무 사람도 처음부터 베드로가 그리스도의 임재가 그에게서 떠났을 때 했던 것보다 더 큰 두려움, 더 큰 위험, 더 큰 의심 가운데 선 적이 없음을 깊이 생각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어느 사람도 그들보다 더 적은 위안을 느끼지 못했고 구원의 더 적은 상황을 보지 못했지만 제자들은 영원토록 거부되지 않았고 베드로는 그 깊음 속에 빠지게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이 믿음은 그들 속에서 완전히 소멸되지 않았고 그러므로 그들이 구원을 받았고 회복되어 위로를 받았다고 반박할 것입니다.

답합니다. 저는 이 시대에 고난당하고 시련을 당하는 양심들이 두려움도 위험도 의심도 실족도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의 믿음을 완전히 멸하거나 소멸시킬 수 없고 항상 그들에게 그들의 근심 중에서 항상 느끼거나 인식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믿음의 뿌리와 불티가 남아 있다는 것을 깊이 생각하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이 주장할 수 있습니다. “모두 그리스도에게서 달아났고 우상 앞에 절한 것을 볼 때 그들 속에 믿음의 불티와 뿌리가 남아있고 또 없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사람이 의식적으로 다른 사람에 대해 판단하는 것은 어렵고 어떤 면에서 불가능하지만 (엘리야는 자신의 시대에 이스라엘 사람들에 대해 판단할 수 없었습니다) 각 사람이 자신에 대해서는 쉽게 판단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믿음의 뿌리가 본성적으로 오래 가만히 있지 못하고 만일 그것이 살아있다면 필연적으로 시간의 경과에 따라 외부의 사람에 의해서 보이고 느낄 수 있도록 가지들을 낼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베드로 안에 남아있다고 들은 바와 같이 그것이 그가 극히 큰 곤란 가운데 있을 때에 그로 하여금 그리스도께 부르짖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믿음의 뿌리가 여러분 안에 있는지 없는 시험해 보시겠습니까? 저는 하나님께 대한 거만한 멸시자들이 아니라 약한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자기 몸이 물속으로 가라앉는다고 느낀 것처럼 당신은 당신의 영혼이 믿음에 있어서 약해졌다고 느낍니까?

베드로가 자기 몸이 물속에 빠질 것을 두려워했던 것처럼 만일 당신이 우상숭배에 찬성하고 복종하면 당신의 영혼이 지옥에 빠지게 될 것을 심히 두려워합니까?

베드로가 자기의 몸의 구원을 바랐던 것처럼 당신은 당신의 영혼의 구원을 간절하게 바랍니까?

당신은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영혼을 구원하실 수 있고 또 그가 자신의 약속에 따라서 그것을 행하시라고 믿습니까?

당신은 지금 이 환난의 날에 거짓 없이 그에게 부르짖습니까?

당신은 그의 임재와, 다시 그의 말씀의 자유를 갈망합니까?

당신은 지금 영국 땅에 넘쳐흐르는 그 큰 가증한 일을 인하여 탄식합니까?

말씀드리는바 만일 이러한 전제들이 아직 당신의 마음에 남아있다면 당신은 완전하게 믿음이 없는 것이 아니며 영원토록 파멸에 내려가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주님께서 자비롭게 자신의 능한 손을 펼치셔서 당신을 지옥의 목구멍과 밑바닥에서 건져내실 것입니다. 하지만 어떤 방도로 그가 자신의 자비로운 일을 행하실지 당신이 요구할 일도 제가 설명할 것도 아닌 것이니 다만 하나님의 손이 우상숭배를 피하라고 우리에게 제시하시는 방도를 우리가 거부하지 아니하고 그것이 부분적으로 우리의 감정에 부합하지 않을지라도 기꺼이 그것을 받아들이는 이것이 필요하고 또 그것이 우리의 본분입니다. 하지만 갑자기 한 방도에 의해서 영국 내의 모든 신자들이 우상에게서 구원을 받으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전에 약해졌던 사람들 가운데 어떤 이들의 마음을 힘 있게 하셔서 그들이 죽기까지 우상숭배를 거부하게 하시고 영광스럽고 승리로운 구원이 있게 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감화시키셔서 우상숭배에 복종하여 온갖 풍족함을 가지고 지내느니 차라리 순례자들로 이 땅에서 저 땅으로 행하며 다니며 굶주림과 추위와 뜨거움과 목마름과 피곤함과 궁핍을 당하는 것을 택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그들이 지도자들이든 고위사제들이든) 우상숭배자들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영토에 남아있지만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도 아니하고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의 살아있는 음식도 부족하기 않게 하실 수 있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러한 방도를 허락하신다면 분명히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그리스도 예수께서 자신의 손을 우리에게 내미셔서 많은 사람들이 망할 것 같은 그 위험으로부터 기꺼이 우리를 구원하시라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거절하지 말고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판단에 전혀 어울리지 않게) 자신의 고난당하는 교회를 구원하시고 도우시고 위로하실 일천 가지 방도를 가지신 것을 알 때 기쁨으로 그것을 굳게 붙잡읍시다. 그러므로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지극히 사랑하는 이들이여, (제가 여러분 중에서 위로와 기쁨으로 맛보았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바) 그리스도의 잔치에 대한 기억이 아직 여러분의 마음에서 없어지지 않은 것과 우리가 그리스도의 명에 따라 이 여정을 시작했음을 고려할 때 그리고 우리가 늘 그리스도의 택한 교회를 대항하여 요동쳤던 바닷바람들이 우리를 거슬리고 대항하는 것을 볼 때 그리고 우리 자신이 즉시 쓰러질 것 같고 이 폭풍의 바다에 휩쓸릴 것 같이 느끼는 것을 볼 때에 우리 하나님 앞에서 은혜의 보좌 앞에 엎드리고 우리의 범죄들을 고백합시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의 괴로움 중에서 우리의 괴로운 마음들에서 울음과 탄식으로 말하면서 해방과 자비를 구합시다.

“오, 하나님! 이방인들이 주의 산업에 들어왔습니다. 그들이 주의 거룩한 성전을 더럽히고 주의 복된 예식을 모독하고 있습니다. 주의 즐거운 표지들 대신 그들은 자기들의 가증스러운 우상들을 세웠나이다. 온갖 신성모독의 숙명적인 잔이 그들의 창기의 손에 다시 회복되었나이다. 주의 선지자들은 박해를 받고 아무도 주의 말씀을 자유롭게 말할 수 없나이다. 주의 목장의 불쌍한 양들은 사람의 전통이라는 독이 든 물을 마시라는 명령을 듣습니다. 그러나 오, 주여! 그들이 얼마나 심하게 우리를 괴롭히는지 주께서 아시니 이 극히 잔혹한 짐승들의 횡포는 자기들이 우리를 단번에 뿌리째 뽑아버려서 우리에 대한 기억이 땅에서 남아있지 않게 하리라고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오, 주여! 주께서 우리는 단지 육체뿐이며 우리가 저들의 횡포를 대항할 힘이 우리에게 없다는 것을 아십니다. 그러므로 오, 아버지여! 주의 자비의 눈을 우리에게 여시고 주의 자비가 시작한 그 일을 우리 안에서 견고하게 하옵소서. 오, 주여! 우리가 우리의 자비로운 찾아오심의 때를 가볍게 여겼기 때문에 우리가 극히 정당하게 벌을 받았음을 인정하고 고백하나이다. 주의 복된 복음이 우리의 귀에서 애인의 노래와 같았고 잠시 우리를 기쁘게 하였으나 아, 우리의 삶은 주의 법도와 거룩한 계명에 합당한 아무 것도 행치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같이 우리는 우리의 범죄가 주의 공의로 하여금 주의 말씀의 빛을 영국 땅 전체에서 취하여 가도록 했음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오, 주님! 우리가 고백한 것이 주의 진리이며 주의 적들이 까닭 없이 주의 거룩한 이름과 우리의 고백을 훼방하고 있음을 생각해 주옵소서. 주의 거룩한 복음이 이단으로 불리고 우리는 그것을 고백한다는 이유로 반역자들로 고소를 받나이다. 그러므로 불쌍히 여기사 우리의 환난의 이 때에 우리에게 구원이 있게 하옵소서. 우리의 죄들이 우리를 고소하고 비난할지라도 주께서 주 자신의 이름에 따라 행하시옵소서. 우리가 주를 훼방했고 우리의 죄들과 범죄들이 헤아릴 수 없지만 주께서 우리 중에 계시나이다. 오, 주여! 폭군들이 우리의 몸을 주관할지라도 우리의 영혼은 주의 말씀의 안위를 갈망하나이다.

“그러므로 책망하시되 주의 뜨거운 분노 중에서 하지 마옵시고 주의 백성을 아껴주셔서 주의 상속들로 영원토록 책망 가운데 있지 않게 하옵소서. 오, 주여! 지금 극히 고난을 받는 자들로 다시 주의 회중 앞에서 주의 거룩하신 이름을 찬송하게 하옵소서. 저 피에 굶주린 폭군들의 자만을 억제하시고 그들이 주의 거룩한 이름에 대하여 놓았던 모독에 따라서 주의 분노 중에 그들을 소멸하소서. 주의 진노를 그들에게 쏟으시고 우리의 눈으로 주의 성도들의 피가 그들의 손에 갚아지는 것을 보게 하옵소서. 주의 진노를 지체하지 마옵소서. 오, 주여! 사망이 급히 그들을 삼키게 붙잡게 하옵시고 땅이 그들을 삼키게 하옵시고 그들로 지옥으로 빨리 내려가게 하옵소서. 왜냐하면 그들의 개선에 대한 희망이 전혀 없고 주의 거룩한 이름의 경외함이 그들의 마음에서 완전히 쫓겨났기 때문이나이다. 그러므로 다시 오, 주여! 주의 분노 중에 그들을 멸하시고 그들로 자기들의 악한 계획들로 성사되지 못하게 하시며 경건한 권능에 따라서 그들로 자기들이 주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예비했던 올무에 빠지게 하옵소서. 오, 주여! 주의 자비의 눈으로 우리를 살펴 보옵시고 주의 약하고 심하게 고난 받는 양떼들인 우리에게 동정을 베풀어 주옵소서. 우리를 다시 한 번 주의 지극히 거룩한 말씀의 보화로 모이게 하셔서 드러나게 우리가 주의 거룩한 복음을 영국 땅 안에서 고백할 수 있게 하옵소서. 오, 하늘에 계신 아버지여! 주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를 인하여 이를 허락해 주옵소서. 아멘.”

만일 이러한 방식으로 혹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속에 두실) 다른 방식으로 진실하게 (우리의 개인의 부요보다 그의 영광을 더 존중하여)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계속 우리의 탄식, 고백, 기도들을 쏟아놓으면 그때는 확실히 우리의 하나님께서 사시거니와 우리가 이 현재의 시련을 느끼는 대로 우리의 하나님께서 친히 일어나서 우리를 지키실 것이며 우리의 적들의 계획들을 무산시키시며 극히 억울하게 우리를 괴롭히는 사람들의 속셈들을 혼란케 하실 것입니다. 그가 예후를 보내셔서 우상숭배자들을 대항하여 그들을 완고하게 방어하려는 사람들을 대항하여 그의 의로운 심판들을 수행하게 하셨습니다. 이세벨 자신도 그들의 분깃을 위하여 예비된 진노와 재앙들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그녀의 가증한 것들의 아첨꾼들과 지지자들이 그녀와 함께 하나님의 진노의 잔을 마셔야 했습니다. 그리고 악마에 불구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영광과 그의 얼굴의 광채는 아직 우리의 마음 안에서 그의 복음의 참된 설교에 의해서 아주 밝게 비치어 우리가 모두 그 앞에 엎으려 말하게 될 것입니다.

“오, 주여! 주는 우리의 하나님이시니 우리가 주를 찬송하고 주의 이름을 고백합니다. 주께서 주의 경륜에 따라 놀라운 일들로 일어나게 하셔서 그들의 멀리 떨어져 있어 보이지만 그들이 참되고 극히 확고합니다. 주께서 폭군들의 궁을 멸망에 이르게 하셨고 그러므로 고난당하는 자들이 주를 높이고 난폭한 민족들의 도시가 주를 두려워하게 될 것입니다. 오, 주여, 주께서 가난한 자들에게 강한 요새가 되셨고 그의 근심의 날에 고난당하는 자들의 피난처가 되셨나이다.”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틀림없이 이것은 영국 땅 안에서 하나님께서 자신의 진노를 지금 모든 가증한 것들 가운데 승승장구하는 이 불순종하며 피에 굶주린 폭군들에게 쏟으신 후에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의 노래가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시 주 안에서 사랑하는 이들이여, 주 예수님의 두 번째 오실 때에 그와의 복된 교제로부터 여러분을 떼어내고 갈라내게 할 수 있는 모든 범죄들을 피하고 도망하며 주의 구원을 인내하며 견디십시오. 깨어 기도하고 악마를 대적하며 이 거대한 폭풍을 거슬러 노를 저으십시오. 얼마 안 되어 주님께서 오셔서 지금 근심과 염려로 짓눌린 여러분의 마음을 위로해 주실 것이고 그때 여러분이 즐거워하며 기뻐하면서 말하게 될 것입니다. “보라, 이분이 우리 하나님이시다. 우리가 그를 기다렸더니 그가 우리를 구원하셨도다. 이 분이 우리의 주님이시다. 우리가 오래 그의 오심을 갈망하였더니 이제 우리가 그의 구원 중에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리라.” 그렇게 됩니다. 우리의 영혼의 큰 감독되신 예수 우리 주님께서 성령의 강한 위로와 함께 여러분의 괴로운 마음들에 힘주시고 도우실 것이니 땅의 폭군들이나 세상의 괴롭힘들이 여러분으로 택한 자들을 위하여 우리의 하늘에 계신 아버지로부터 처음부터 예비된 그 나라에 대한 소망과 기대로부터 쫓아낼 힘이 없습니다. 그에게 모든 찬양과 존귀와 지금과 영원토록 돌릴지어다. 아멘.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여러분의 매일의 기도에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우리 주 예수님의 은혜가 여러분 모두에게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아멘.

괴로운 심정을 가지고

존 녹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