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인트 피터 교회 교우들에게 보내는 목회서신

 

맥체인 목사가 질병으로 교인들을 떠나게 되었을 때, 그는 매주 편지를 보내어 교인들을 격려했습니다. 교인들을 사랑하는 목사의 마음을 이 서신들을 통해 읽습니다. 모두 10통의 목회서신이 있지만 5 통만 번역하여 공개합니다. 번역 이강호 목사

 

첫 번째 목회서신

(하나님께서 하신 일에 대한 견해, 그것이 어떻게 그들에게 영향을 주어야 하는지)

 

1839년 1월 30일, 에든버러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입었으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신실한 저의 사랑하는 친구들이며 교우들인 여러분 모두에게 여러분의 목사는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님께로부터 은혜와 평안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여러분 중에서 여러 사람이 저에게서 소식을 듣고 싶다는 소원을 말했고, 주님 예수에 대하여 증언하도록 처음에 저를 여러분에게 보내신 그분께서 몇 주간 저를 물러나 있게 하시고 아직도 그의 고통스럽지만 부드러운 손을 제게 대고 계시므로 기도와 더불어 매 주 짧은 권면의 말씀을 여러분에게 적어 보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성령께서 펜을 이끄셔서 쓰는 바가 은혜 안에서 여러분의 위로와 성숙이 되도록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제가 여러분 모두를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얼마나 많이 사모하는지 하나님께서 저의 증인이십니다. 그리고 제 방의 벽들은 얼마나 자주 조용한 야경들이 여러분 모두를 위한 간절한 기도들로 채워지는지 증언할 수 있습니다. 저는 정말로 요한과 같이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즐거움이 없도다(요한3서 4절)”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 중에서 많은 이들이 저보다 먼저 그리스도 안에 있었고, 제가 그 포도원으로 보내지기 전부터 참 포도나무의 살아있는 가지였을지라도, 저는 여러분이 더욱 성령으로 충만해지고 더욱 열매를 많이 맺어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릴 수 있게 되는 것을 아는 것보다 더 큰 기쁨이 없다는 것이 여러분에 대해서도 사실이라는 제 말을 믿으십시오.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여러분은 바울이 주님의 죄수로 있을 때 빌립보사람들에게 “형제들아. 나의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의 진보가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빌1:12)”라고 적어 보낸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제가 진정 바라는 것은 제게 일어난 일들 속에서 여러분과 제가 동일한 것을 이해하여 하나님의 우리를 다루시는 모든 일들 속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정당성을 인정하고 “그의 꾸지람을 경시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서 만일 주님의 모든 일꾼들이 데려감을 당하여도 전혀 불편을 느끼지 않을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제가 아주 잘 압니다. 아, 영원토록 책망 받지 않고 죄를 범하며 자기들 보기에 옳은 것을 하도록 내버려두기만 한다면 기뻐할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지요!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같이 받은 자”들인 여러분에게, 주님의 백성들인 여러분에게 현재는 고난의 때요, 나오미가 느꼈던 것처럼 주의 손이 우리를 치신다고 여러분이 느끼고 계시리라고 저는 매우 확신합니다. 제가 지금 여러분에게 편지를 쓰는 목적은 여러분에게 “그것이 잘된 일이며” “주님께서 모든 일들을 잘 하셨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진실로 여러분에게 복음의 진보를 위한 것일 수 있다는 것을 간략하게 확신시키려는 것입니다.

 

첫째, 제 자신에 관련된 것입니다. 그것이 저에게 어떤 유익이 될 수 있는지 여기서 말하는 것이 저에게 적합하지 않습니다. 단지 그것이 여러분에 대한 저의 목회사역의 허물과 불완전함을 되돌아보는 귀한 기회였음을 말씀드리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조용한 한 시간이 사람과 평생 함께 한 것만큼 가치가 있습니다. 제가 정금과 같이 나오도록, 찌끼가 없어지도록, 그리고 하나님의 뜻이라면 제가 더 나은 사람, 더 헌신된 일꾼이 되어 여러분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제가 배워야 할 것이 많으니 다윗의 이 말이 자주 저의 마음속에 그리고 저의 입술 위에 있었습니다. “여호와여 내가 알거니와 주의 판단은 의로우시고 주께서 나를 괴롭게 하심은 성실하심으로 말미암음이니이다(시119:75).” 목사들은 복음의 성전을 짓는 하나님의 연장들입니다. 지혜로운 일꾼마다 자기의 연장들을 종종 작업에서 떼어내어 그것들을 갈기도 하며 날을 세우기도 한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잘 아십니다. 그같이 온전히 지혜로우신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일꾼들을 때때로 떼어내 어둠과 외로움과 고난에 처하게 하셔서 자신의 일에 있어서 더 힘든 사역을 위하여 민첩하게 하며 준비시키는 것입니다. 그것이 여러분의 목사에게 그렇게 되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둘째, 주님 안에서 저의 사랑하는 형제자매들이여, 여러분과 관련하여 이 시련의 때가 여러분의 진보를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수단으로 하여 여러분으로 사람을 넘어서서 항상 살아계시는 구주를 바라보라고 가르치시는 것이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목사들은 쉽게 깨어지는 질그릇이며 깨진 손잡이처럼 마음에서 잊어버리기에나 적합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가 여러분에게 그들 속에 있었으며 그리스도로부터 모든 충만함 가운데 흘러넘치고 있는 그 보배를 더 많이 바라보라고 명하고 계신 것이 아닙니까? 많은 기독교인들이 목사에 대한 친분을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으로 오해함으로써 사람에게 기대어 넘어지고 있는 것을 제가 알고 있는 바, 그것은 비통한 잘못인 것입니다.

모세가 이스라엘을 건져내도록 보내심을 받기 전에 그의 손이 눈처럼 희게 문둥병이 든 것은 이스라엘을 구원할 수 있는 것은 그 손의 권능이 아님을 그들에게 가르치시고자 함이었음을 기억하십시오(출4:6,7). 사람에게 너무 많이 기대는 것이 여러분 중 어떤 사람들의 잘못이었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물동이는 깨어질 수 있지만 샘은 언제나 열려있으며 풍족하고 값없이 머물러 있다는 것이며, 여러분이 양식을 얻은 것이 어느 특별한 목사의 사역 아래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리스도에게 전적으로 연합되어 있음으로 말미암아 된 것임을 가르치고 계십니다. 목사들은 “죽음을 인하여 항상 있지 못함이로되 예수는 영원히 계시므로 제사직분이 갈리지”(히7:23) 아니합니다.

 

셋째, 여러분 중에서 그리스도인이 거의 된 것 같지만 완전히 그리스도인이 되지 못한 사람들에 관련하여 말씀드립니다. 이 섭리가 여러분에게 지체하지 말고 그리스도 안의 구원에 대해 확신하라고 가르치고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과 저의 안식일들이 모두 헤아려졌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고 여러분은 구주로 하여금 여러분을 위하여 무한정한 수의 안식일들을 정해 놓으셨다고 생각했습니다. 수차례 여러분은 마음속으로 저에게 말했습니다. “지금은 가라. 내가 틈이 있으면 너를 부르리라(행24:25).” 여러분이 선생들을 찾으나 그들이 무덤처럼 잠잠할 때가 오리라는 것을 여러분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여기의 많은 경건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충성스러운 증인들이 침묵하게 되며, 근심하는 영혼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찾아서 이 바다 저 바다를 헤맬지라도 찾을 수 없는 그러한 때가 오기를 바라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오, 주저하는 영혼들이여, 여러분의 구원의 문제를 지금 해결하시라고 간청드립니다. 왜 두 생각들 사이에서 머뭇거리고 있습니까? 구주께서 손을 넓게 펴시고, 사랑의 성령께서 애쓰고 계시는데, 이 같은 세상에서 그렇게 연약한 몸들을 가지고서, 끝없는 영원에 관한 일에 관하여 우물쭈물하고 있는 것은 매우 불합리한 일입니다. 여러분이 육체이며 여러분이 곧 여러분의 마지막 설교를 듣게 되리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내가 오늘날 천지를 불러서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라(신30:19).”

 

넷째, 여러분에게 속해 있지 않지만 모든 면에서 여러분에게 관여하는 다른 부류의 사람들, 곧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했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저희의 마침은 멸망이요, 저희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저희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빌3:18,19)라고 한 사람들에 관하여 말씀드립니다. 아! 만일 제가 여러분을 위하여 제 마음에 가진 심한 눌림과 지속되는 근심을 여러분에게 말씀드린다면 여러분은 믿으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떨어져 있는 것이 여러분에게까지 복이 되기를 바랍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선생들을 하나씩 데려가신다면, 만일 그가 우리의 조상들의 언약한 교회를 대적들 앞에서 무너지도록 용납하신다면, 만일 그가 교황주의가 다시 이 땅에 어둡고 죽음 같은 그늘을 다시 펼치도록 용납하신다면, 여러분은 어디 있게 될 것인지 잠깐이라도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이 안식일을 멸시하고 설교된 말씀에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며, 여러분의 가족들 가운데서 기도하지 않고 골방에서도 거의 기도하지 않으며 쾌락을 사랑하는 자들이며 죄에 빠져있습니다! 그때 여러분은 여러분의 소원대로 될 것이니 정말로 잠잠한 안식일들을 가지게 될 것이고 소리치며 여러분을 좇아가는 경고의 소리도 없을 것이고 기도하는 사람들이 여러분을 위하여 기도하는 일도 없을 것이며 아무도 악한 길에서 여러분을 멈추게 할 사람이 없을 것이며 아무도 여러분으로 멸망하지 않도록 간청하는 사람도 없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위임된 목사가 멀리 떨어져 있음과 같은 하찮은 상황으로부터 무엇이 여러분을 위하여 준비된 것인지를 배우시고 지금 다가올 진노로부터 피하십시오. “너희가 혹시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숨김을 얻으리라(스바냐2:3).”

 

마지막으로,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이며 나의 진정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이여, 제가 떠나 있음을 인하여 더욱 그리스도 안에 머무시고 하나님과 더욱 친밀한 동행을 유지하여 하나님께서 지금 저에게 행하시리라는 좋은 희망들을 주시는 것처럼 제가 돌아왔을 때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영혼들을 위하여 얼마나 크신 일들을 행하셨는지 보고 기뻐하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외진 산등성이에 사람의 도움 없이 들꽃을 기르시는데 그것들은 우리들의 정원들에서 매일 돌보아주는 꽃들처럼 싱싱하고 사랑스럽습니다. 그같이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친히 심은 자들을 사람의 도움 없이 자신의 성령의 감미롭게 떨어지는 이슬에 의하여 먹이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과의 거룩한 친교 속에서, 형제들에 대한 사랑과 세상에서 하나님의 대의를 위한 불타는 열심 가운데 행하는 것을 제가 얼마나 보고 싶은지요!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켜 있는 등불로 숨길 수 없는 언덕 위에 선 도시로 만드시기까지, 저는 결코 쉬지 않을 것이며 하나님으로 쉬지 못하시게 할 것입니다. 이제 저를 위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여러분의 기도로 저와 함께 힘써 주셔서 제가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기쁨을 가지고 여러분에게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여러분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저의 사랑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여러분 모두에게 함께 있습니다. 아멘.

 

 

 

두 번째 목회서신

 

빼앗길 수 없는 좋은 편을 택한 나의 사랑하는 양떼 여러분 모두에게 여러분의 목사는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은혜와 사랑과 평안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이스라엘의 사랑스러운 시인이 자기의 노래를 이러한 놀라운 말로 시작합니다. “내가 인자와 공의를 찬송하겠나이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 찬양하리이다.” 이것은 고난의 때에 있는 모든 하나님의 종들의 체험입니다. 사나운 폭풍들 중에도 하늘이 온통 캄캄하기만 한 것은 아닌 것 같이 자녀들에 대한 하나님의 알 수 없는 처우 속에도 선을 위한 밝은 증거들은 항상 있습니다. 근래 우리에 대한 주의 길은 “바다에 있었고 주의 첩경이 큰물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 중 몇 사람은 그분 자신의 손이 양떼같이 우리를 인도하고 계셨다고 느끼셨을 것입니다(시77:19,20). 그분의 인자하심의 한 가지 커다란 표지는 여러분의 담임 목사의 떠나 있음을 채워주신 방도였습니다. 장립을 받은 사자(使者)들, 믿음과 기도의 사람들이 안식일마다 주님의 이름으로 여러분에게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일깨우고 초청하고 위로하는 메시지들을 받고 있으니 매주 목요일 저녁 집회에서 그분께서 여러분을 위하여 계속 그렇게 하셨습니다. 기도의 집의 문들이 도피성의 문들처럼 항상 열려있어서 여러분을 초청하여 들어와서 믿음으로 야곱이 벧엘에서 본 것 곧 “사닥다리가 땅위에 섰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은 것을 보며, 여러분을 초청하여 동틀 때까지 야곱이 씨름했던 그분을 만나라 하고 있습니다. 박해의 시대에 얼마나 자주 사도들은 자기들이 심은 씨를 “자신들이 믿은 주님” 외에는 거기에 물 줄 아무 사람도 남기지 못하고 떠날 수밖에 없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사도행전 13장 50,52절과 14장 23절, 16장 40절을 보십시오.) 스코틀랜드 교회의 박해시절에 우리의 충성스러운 목사들이 자신들의 소수의 양들을 그들의 영혼들을 돌볼 어떤 목자도 없이 그들을 하나님께, 그의 은혜의 말씀에 부탁하며 빈들에 남겨두어야 했었습니까! 이러한 때가 다시 올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러한 불같은 시련들을 우리를 위해 예비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분께서 아직 우리에게 그렇게 다루시지 않으셨습니다. 털 깎은 양에게 바람을 약하게 하시는 그분, 그리고 “동풍의 날에 그의 거친 바람을 누그러뜨리시는” 그분은 심판과 자비를 섞으시며 우리를 낮추실 때에도 우리에게 찬양할 이유를 주십니다.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이한 일을 인하여 그를 찬송할찌로다.”(시107:8). 우리를 향하신 인자하심의 또 다른 증거는 저로 하여금 여러분을 위하여 기도하게 하신 일입니다. 사도들이 사도행전 6장 4절 “우리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전무하리라”에서 목회사역의 일을 어떻게 묘사했는지 여러분이 아실 것입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간 이후로 이것이 제 마음의 소원이었음은 하나님께서 저의 증인이십니다. 저는 지혜 있는 사람들이나 지혜가 없는 사람들이나 여러분 모두에게 항상 빚진 자라고 생각해 왔고 그리하여 제 안에 있는 만큼은 제가 여러분에게 복음을 설교하려고 해 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잠시 여러분 가운데의 목회사역의 일로부터 저를 물러나게 하셨습니다. 지금 저에게는 여러분에게 그리스도의 측량할 수 없는 풍성을 설교하는 은혜가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오, 그것은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그것이 항상 제게 주어진다면 얼마나 놀랍겠습니까!) 하지만 하나님은 제게 기도에 전념할 수 있도록 허락하십니다. 아마 이것이 제가 여러분에게서 떠나게 된 중요한 이유가 될 수 있으니, 스가랴가 순금 등대와 두 감람나무들 사이의 환상에서(슥4:6) 가르침을 받았던 바를 제게 가르치셔서 하나님의 성전이 우리의 교구에 세워지는 것은 힘으로 되지 아니하고 능으로도 되지 아니하고 다만 믿고 씨름하는 기도 속에서 받을 수 있는 성령에 의해서 된다는 것입니다. 저는 저의 수금을 버드나무에 걸었으며, 더 이상 “수금으로 나의 오묘한 말을 풀도록”(시49:4) 허락을 받지 못했으며 “사람의 아들들보다 아름다우신” “왕에 대하여 지은 것을 말할”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제 영혼은 침묵 속에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저는 저의 극락의 하나님께 홀로 나아가도록 허락을 받고 있습니다. 그의 영광을 묵상하면서 저는 기도하면서 여러분 모두의 이름을 말씀드리며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작은 양떼를 위하여 감사를 드릴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잊을진대 내 오른손이 그 재주를 잊을찌로다. 내가 예루살렘을 기억지 아니하거나 내가 너를 나의 제일 즐거워하는 것보다 지나치게 아니할진대 내 혀가 내 입천장에 달라붙을찌로다.” 제가 여러분에게 편지를 써 보낼 수 있도록 허락된 것은 또 다른 은혜의 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도들이 제자들에게서 떨어져 있을 때 그들에게 써 보냄으로 얼마나 자주 그들을 유쾌하게 하고 힘을 돋우었는지 여러분은 아십니다. 이 서신들이 모든 시대에 교회의 얼마나 큰 유산이었습니까! 각 구절이 갖가지 과실들과 만국을 치료하는 나무 잎사귀들을 맺는 생명나무 가지와 같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거룩한 새뮤얼 러더퍼드와 핍박을 받은 스코틀랜드 교회의 많은 우리 조상들이 그들에게 얼굴을 마주하지는 못했지만 잉크와 펜을 가지고 권고와 경고와 격려와 증언의 말씀을 보냄으로 버려진 교인들에게 은혜의 불꽃이 살아있게 했는지 알고 있습니다. 저는 이 문이 제게 열려있고 비록 떠나있지만 여러분에게 그 나라에 관한 일들을 여러분에게 말할 수 있는 것을 대단한 특권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들이여, 제가 지금 여러분에게 이 둘째 편지를 쓰고 있는 바, 이 두 편지로 저는 여러분으로 생각나게 하여 여러분의 순전한 마음을 일깨우고자 합니다. 정말로, 제가 이 장막에 있을 동안, 여러분들을 일깨워 생각나게 함이 옳은 줄로 여깁니다.”

1. 어린 자녀들이여, 제가 항상 여러분에게 설교했었던 그분 안에 거하십시오. 그리하여 그가 나타나실 때 우리가 담대함을 가지며 그의 오실 때 그분 앞에서 부끄러움을 당하지 말아야 합니다. 여러분의 악한 마음에 대한 각각 새로운 발견과, 고통의 각각 새로운 파도가 여러분의 영혼으로 몰아 구원의 반석이신 그분 안에 숨게 하십시오. 여호와 우리의 의를 실제로 붙잡는 것 외에는 진정한 평안이 없습니다.

2. 죄 사함을 즐기십시오.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을 지키십시오. 만일 여러분이 그리스도 안에 머문다면 여러분은 그의 사랑 안에 머물게 됩니다. 여러분의 기쁨을 누구도 빼앗아가지 못하게 하십시오. “우리가 이것을 씀은 너희의 기쁨이 충만케 하려 함이로라.”

3. 깨끗하여 주님의 그릇들이라는 표지를 가지십시오. “저 안에 거한다 하는 자는 그의 행하신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 아, 만일 하나님께서 저를 여러분에게 다시 돌아가게 하신다면 제가 돌아가서 얼마나 많은 타락들에 대해 슬퍼해야 할까요? 하나님의 소유인 여러분 중에 있는 얼마나 어울리지 않은 다툼들과 과실들에 대해 슬퍼해야 될까요? 온전히 사랑스러우신 그분을 따르는 여러분 중에 있는 얼마나 사랑스럽지 못한 기질들에 대해 슬퍼해야 될까요? 오, 조심하십시오. 적에게 조롱할 구실을 주지 마십시오.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면서 모든 불법에서 떠나십시오.

4. 계속 기도하십시오. 얼마나 많은 교훈들이 공개적으로, 집에서 집으로 여러분에 전달되었지만 그 성과는 얼마나 빈약한지요! 저는 하나님의 영께서 스코틀랜드 교회를 떠나지 아니하셨고 영광이 아직 그 나라 안에 있다고 우리에게 주신 모든 증거들을 인하여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하지만 성령께서 우리에게 풍족하게 부어진 적이 없습니다. 안식일 오후에 많은 불참자들, 목요일 저녁의 사람 수가 적은 모임들, 하나님께 대한 예배를 위한 모든 모임들에서의 불참, 희박한 개인적인 기도회들, 기독교인들 중의 사랑과 연합의 결핍, 이 모든 것들이 충분한 비가 우리의 유산의 외진 곳을 새롭게 할 만큼 내리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왜 이렇습니까? 지금은 그리스도의 능력의 날입니다. 왜 사람들이 자발적이 되지 않습니까? 야고보가 답변합니다. “너희가 받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이제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러면 너희가 받을 것이요,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마지막으로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안녕히 계십시오. 밤낮으로 저는 여러분에게 가고 싶지만 하나님께서 여전히 저를 막고 계십니다. 그가 우리의 쓴잔에 섞으신 모든 크신 은혜를 인하여 그를 찬양하기를 잊지 마십시오. “주의 의로운 규례를 인하여 내가 하루 일곱 번씩 주를 찬양하나이다.” 물을 지날 때에 그가 우리와 함께 계셨고 강 속에서도 물이 우리를 삼키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불을 지날 때에도 우리는 타지 않을 것이며 불꽃이 결코 우리를 사르지 못할 것입니다.

이제 평강의 하나님께서 친히 여러분에게 항상 평강을 주시고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여러분의 영혼들과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아멘.

 

 

 

세 번째 목회서신

(하나님께서 어떻게 섭리로 일하시는가)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며 또 항상 따라갈 나의 사랑하는 친구들이요 교우들인 여러분 모두에게 여러분의 목사가 다시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님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을 기원합니다.

저는 이 은혜가 제게 주어져서 다시 여러분 중에서 대면하여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을 전하게 되기를 진정 사모합니다.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하였으나 지금까지 길이 막혔도다.” 하지만 제가 물러나 있을 때에도 여러분들을 안정시킬 목적으로 여러분에게 한 마디 말을 보낼 수 있는 것을 저는 큰 특권으로 여깁니다. 저는 마치 주님께서 제게 하나의 문을 열어놓으신 것처럼 느낍니다. 제 마음의 최우선적인 소원은 그리스도께서 이제와 또 그의 오실 때에 여러분 중에서 영광을 받으시고, 여러분이 복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며 복을 받으며 복이 되는 것입니다. 변화를 주기 위하여 제가 여러분의 생각을 하나님의 말씀의 한 구절로 인도하여 거기서 마치 제가 여러분과 함께 있는 것처럼, 그리고 여러분이 제 앞에 없다는 것을 거반 잊은 것처럼, 여러분에게 말하고자 합니다.

욥기 23장 8-10절에서 여러분은 이 엄숙한 말씀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내가 앞으로 가도 그가 아니 계시고 뒤로 가도 보이지 아니하며 그가 왼편에서 일하시나 내가 만날 수 없고 그가 오른편으로 돌이키시나 뵈올 수 없구나.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여러분 모두가 욥에게 임했던 고난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는 완전하고 의로운 사람이었고” 동방의 모든 사람 중에 가장 큰 자였지만 그는 한 날에 그의 소들과 나귀들과 양들과 약대들과 그의 열 아들들을 잃었습니다. 다시 질병의 바람이 그에게 닥쳐왔고 그는 재 가운데 앉았습니다. 이 모든 일에서 욥은 입술로 죄를 짓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을 친 손을 찬양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재앙도 받지 아니하겠느뇨?” 하지만 그의 고난이 길어질 때 그는 무엇을 생각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가장 강한 신자가 얼마나 약한지, 그리스도가 없으면 우리는 상한 갈대이며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아십시오. 욥의 형제들이 “시내처럼” 그를 거짓되게 대할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울타리를 세워 가두실 때, 하나님의 화살들이 그의 기운을 쇠하게 할 때, 구름과 어둠이 그의 길에 머물 때, 하나님께서 자기 영혼을 다루시는 일을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그는 외쳤습니다. “무슨 연고로 나와 쟁변하시는지 어찌하여 저와 다투시는지 제게 알려주십시오.” 그는 하나님께로부터 설명을 듣기를 원했습니다. “내가 어찌하면 하나님 발견할 곳을 알꼬? 그리하면 내가 그 보좌 앞에 나아가리라. 그런데 내가 앞으로 가도 그가 아니 계시고 뒤로 가도 보이지 아니하며 그가 왼편에서 일하시나 내가 만날 수 없고 그가 오른 편으로 돌이키시나 내가 뵈올 수 없구나(욥23:8,9).” 여기 8,9절에서 어둠 속을 걷는 빛의 자녀, 하나님께서 어찌하여 자기와 다투시는지 알기를 구하나 헛되이 구하는 고난 받는 영혼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친구들이여, 이것이 드문 일이 아니니 여러분 중의 어떤 이들에게 하나님의 섭리가 때때로 이해할 수 없어 보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중에서 일하고 계시며 “그의 길은 바다 가운데 있다”고 저는 듣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양한 방식들로 여러분을 시험하셨으니 어떤 이에게는 욥과 같이 재산을 잃어버림으로, 어떤 이에게는 친구를 잃어버림으로, 어떤 이에게는 건강을 잃어버려서 “수고로운 밤들이 작정되었고”, 어떤 이는 친구들의 신임을, 심지어 기독교인들의 신임을 상실하는 것으로 여러분을 시험하십니다. “여러분의 가까운 친구들이 여러분을 미워합니다.” 아마 한 가지 이상의 시련들이 단번에 파도 위에 파도, 가시 위에 가시처럼 여러분에게 찾아올 수도 있습니다. 하나의 상처가 치료되기도 전에 다른 것이 오고 비가 아주 그치기도 전에 “구름들이 몰려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에 향한 하나님의 처우를 설명할 수 없고 하나님께서 그것을 설명하시도록 할 수도 없습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피와 의를 여러분의 영혼들에 가져왔고 성부 하나님께서 친히 여러분을 사랑하신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만나서 묻고 싶어 합니다. “어찌하여 저와 쟁변하십니까?” “내가 어찌하면 하나님 발견할 곳을 알꼬?”

고난당하는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여러분에게 일어난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거의 모든 신자들은 이런 때에 혹 저런 때에 이러한 곤란에 놓이게 됩니다. “하나님이 나로 낙심케 하시며 전능자가 나를 두렵게 하시나니.” 욥23:16. 그가 나를 괴롭게 하시는 것이 노하심에서인가 아니면 순전한 사랑에서인가? 요나가 도망한 것처럼 내가 주님 앞에서 도망하고 있는 것인가? 그분께서 내 안에서 어떤 변화를 이루시려고 하는가? 만일 여러분 가운데 자신의 마음에서 그같이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욥의 이 말을 생각하고 기도하십시오. 시편 46편의 말씀을 생각하십시오.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하나님이심을 우리에게 가르치시고 우리로 그를 섬기게 하시려고 많은 일들을 행하십니다. 더욱이 10절에서 어떤 빛이 우리의 어둠을 뚫고 들어오는지를 보십시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

 

첫째,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신다는 것”을 주목하십시오. 어떠한 감미로운 위로가 나를 구속하신 그분, 아버지로서 나를 불쌍히 여기시는 그분, 오직 지혜로우신 하나님이신 그분, 사랑이라는 이름을 가지신 그분, 그분이 내가 가는 길을 아신다는 이 말에 있습니까!

경건하지 못한 세상은 그것을 알지 못하니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는 것처럼 또한 우리를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낯선 사람은 하나님의 자식의 기쁨이나 슬픔에 참견하지 않습니다. 세상이 여러분의 슬픔에 무관심한 눈으로 바라볼 때, 여러분은 쓸쓸하게 느낍니다. “평안한 자의 조소가 여러분의 심령에 넘칩니다.” 그러나 어찌하여 여러분은 그래야 합니까? 온 세상보다 크신 그분께서 여러분의 모든 걸음들에 아주 깊은 관심을 가지고 보고 계십니다.

매우 가까운 친구들이 고난 받는 한 신자의 길을 알지 못합니다. 여러분의 영은 하나님의 자녀들 가운데서도 외롭습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의 길은 숨겨져 있고 주님께서 울타리를 치셔서 여러분을 가두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즐거워하십시오. 만유의 아버지시며 친구들 중의 친구께서 여러분이 취한 모든 길을 알고 계십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자신의 길을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고난 받도록 부르셨고 여러분은 갈 바를 알지 못했던 아브라함처럼 나아갑니다. 홍해로 들어가는 이스라엘처럼 모든 걸음이 여러분에게 이상합니다. 그러나 즐거워하시며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 받는 자가 되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발걸음마다 주목하십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 길을 기뻐하시나니.” 무한하고 변함없는 사랑으로 여러분을 사랑하시는 그분이 자신의 성령과 섭리로 여러분을 인도하십니다. 그분이 여러분의 길에 있는 모든 돌, 모든 가시를 아십니다. 예수님께서 여러분의 길을 아십니다. 예수님께서 여러분의 모든 고난 중에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내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못하리니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둘째, “그가 나를 단련한 후에는 정금같이 나오리라.” 이 또한 보배로운 위로입니다. 여러분의 고난의 끝이 있을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은 “큰 환난”을 가져야 합니다만 그들은 거기서 나옵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져야합니다만 잠깐 있으면 면류관이 옵니다. 저는 하나님의 딸 아이 하나가 만일 천년 동안 시련을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자기는 그의 뜻 안에서 즐거워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아니니 우리는 “잠시 동안” 고난을 받도록 부름을 받았을 뿐입니다. 풀무에 들어가는 시간이 정해져 있고 풀무에서 나오는 시간이 정해져 있습니다. 포도나무의 가지들을 가지치기하는 때가 있고 농부가 가지치기하는 낫을 놓을 때가 있습니다. 그분의 때를 기다립시다. “믿는 자는 급절하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의 때가 가장 좋은 때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들어갈 때와 똑같이 나올까요? 아, 아닙니다! 우리가 정금 같이 나올 것입니다! 이것이 가장 쓴잔을 달게 하고 이것이 매우 캄캄한 구름 위로 약속의 무지개를 가져옵니다. 고난은 확실하게 신자를 정결하게 할 것입니다. 그가 얼마나 담대하게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사랑하는 신자들이여, 얼마나 많은 찌끼가 여러분 각자에게, 그리고 여러분의 목사에게 남아있습니까!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오, 모든 찌끼를 풀무 속에 남겨둘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어떤 결함들, 어떤 죄가 우리가 행한 모든 일에 섞여 있는지요! 그러나 우리가 진실로 참 포도나무의 열매 맺는 가지들입니까? 그렇다면 우리가 가지치기를 받았을 때 더욱 많은 열매를 맺게 될 것이 확실합니다. 우리는 정금처럼 나올 것입니다. “하나님의 손의 왕관”처럼 더 순결하게 빛날 것입니다. 우리가 찬양과 기도의 감미로운 향기를 담는 더욱 정결한 그릇들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와 영원토록 주님께서 쓰실 만한 거룩한 금 그릇들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서 그리스도 안에 어떤 관여나 분깃이 없는 많은 사람들에게 저는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여기서 시련의 때에 기독교인이 되는 것의 복됨을 아십시오.” 어둡고 구름 낀 날에 시편 46편을 부를 수 있는 것은 결코 적잖은 기쁨입니다. 제가 자주 여러분에게 말씀드렸으며 여러분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지금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여호와께서 ‘주마’ 하신 곳으로 우리가 진행하나니 우리와 동행하자. 그리하면 선대하리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복을 내리리라 하셨느니라.”

 

마지막으로, 여러분의 목사가 그의 시련들에게서 정금 같이 나올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번쩍이는 모든 것이 금은 아닙니다. 단지 번쩍이는 찌끼인 모든 것은 없어지고 하나님의 뜻이 계시면 제가 오빌의 정금같이 되어 여러분에게 갈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기도를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또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되 하나님이 전도할 문을 우리에게 열어 주사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하시기를 구하라.”

여러분에 관한 저의 큰 위안은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의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입니다. 형제들이여, 안녕히 계십시오. 온전해지며 위안을 가지며 한 마음이 되고 평안히 사십시오. 그리하면 사랑과 평안의 하나님이 여러분과 함께 계실 것입니다.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이 여러분 모두에게 있기를 기원합니다. 아멘.

 

 

 

네 번째 목회서신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

 

사랑 안에서 하나님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되기 위하여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택함을 입은 나의 사랑하는 양떼인 여러분 모두에게, 여러분의 목사가 다시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안을 있기를 기원합니다.

만일 우리가 섭리들을 잘 살펴보기만 한다면 날마다 우리에게 일어나고 있는 감미로운 많은 섭리들이 있습니다. 목사들이 선택하는 성경본문들에서, 하나님께서 자주 얼마나 놀라운 섭리들을 가져오시는지요! 저는 자주 이것을 느꼈었는데 지금처럼 많이 느낀 적은 없었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제가 교회에서 여러분에게 마지막으로 읽어드린 성경은 열왕기상 19장임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거기서 우리는 엘리야가 광야에 들어가 밤낮 40일이 지난 후 하나님의 산에 이르렀고 그곳에서 하나님께서 영혼을 회심시키는 것은 폭풍도 아니고 지진도 아니고 불도 아니고 복음의 세미한 음성임을 배우게 되었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것이 우리로 일어났던 일에 대해 예비시키려고 은혜롭게 의도된 것이 아니었겠습니까?

여러분 중의 어떤 사람들은 또 하나의 섭리를 알아채셨을 것입니다. 제가 여러분을 떠나기 전 목요일 밤에 몇 번 믿는 기도의 감미로운 의무를 설명하며 강조하는 일에 썼습니다. 그 이후에 하나님께서 “시련은 약속을 달게 한다.” “시련은 기도에 새 생명을 준다”는 이러한 일들의 활용을 우리에게 가르치지 않으셨습니까? 아마 우리 중에 어떤 사람들은 그 생각을 머릿속으로만 받아들이고 있었을 것인데 지금 하나님께서 그것을 우리의 마음에 명심시키시며 우리가 배운 바를 실천하라고 촉구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제가 여러분에게 말하도록 인도함을 받은 모든 점들을 기억하지 못하지만 한 가지가 완전히 빠졌다고 생각되는 바, 곧 기도의 응답에 관한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지금 그것을 이어 생각하도록 남겨놓으신 것입니다. 아, 제가 여러분에게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신다”는 이것만큼 확신시키고 싶은 것이 없습니다. 믿음 있는 기도가 응답되지 않고 남겨진 적은 결코 없었고, 앞으로도 결코 없을 것입니다. 이것을 묵상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이렇게 말하게 되실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내 음성과 내 간구를 들으시므로 내가 저를 사랑하는도다(시116:1).”

 

첫째, 하나님께서는 자주 자신의 자녀들이 기도하는 바로 그 시간에 그들이 기도하는 바로 그것을 주십니다. 한나를 기억하실 것입니다(삼상1:10). 그녀는 마음에 괴로움이 있었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심히 울었습니다. “당신의 여종에게 남자아이를 주소서.” 이것이 그녀의 간구였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평안히 돌아갔고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그녀가 하나님께 구하였던 간청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녀는 아이 이름을 사무엘이라고 지었으니 “하나님께 구하였다”는 뜻입니다. 오, 여러분의 모든 선물에 그와 동일한 이름을 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은 그것들로 더 기쁨을 가질 것이며 그것들과 함께 더욱 큰 복을 받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다윗이 시편 138편에서 “내가 간구하는 날에 주께서 응답하시고 내 영혼을 장려하여 강하게 하셨나이다”라고 말하는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엘리야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원컨대 이 아이의 혼으로 그 몸에 돌아오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엘리야의 소리를 들으시므로 그 아이의 혼이 몸으로 돌아오고 살아난지라(왕상17:21).” 다니엘을 기억하실 것입니다(9:20,21). “내가 말하여 기도할 때에 이전 이상 중에 본 그 사람 가브리엘이 빨리 나와서 저녁 제사를 드릴 때 즈음에 내게 이르더니.” 오, 여러분 중에서 다니엘과 같이 하나님께 크게 사랑을 입은 사람들, 하나님의 말씀 책들을 많이 보며, 기도로 하나님의 교회를 위하여 은사들을 구하려고 주님을 향하여 얼굴을 돌리고 있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격려가 여기에 있습니까! 여러분이 기도하면서 말하고 있을 때 응답을 기대하십시오. 때때로 아침에 일어난 증기가 저녁에 많은 소나기로 내려옵니다. 여러분의 기도가 바로 그와 같을 수 있습니다.

시편 5편 3절 다윗의 말을 붙잡으십시오. “여호와여, 아침에 주께서 나의 소리를 들으시리니 아침에 내가 주께 기도하고 바라리이다.” 사도행전 12장에서 여러분은 베드로가 감옥에 갇혔으나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빌더라”고 한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보십시오. 바로 같은 날 밤, 응답이 문에서 그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오, 만일 우리가 쉬지 않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저를 위하여 간직해두신 선하고 은혜로운 놀람거리들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만일 여러분이 하나님께 대하여 어린아이 같은 믿음을 가지고 양자의 영으로서 속으로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자신의 개인적인 이익보다 하나님의 영광을 더욱 구하며 예수님께 연합하여 기도하면 저는 모든 경우에 있어서 여러분이 구하는 그 시간에 여러분이 구하는 그것을 얻으리라고 믿습니다. 여러분이 부르기 전에 하나님이 응답하십니다. 여러분이 말할 때에 그가 응답하실 것입니다.

아, 만일 여러분 가운데 그렇게 기도하며 씨름하는 야곱과 같이 거기서 끈기 있게 기도하는 사람 스무 명만 있다면 여러분이 구하는 것마다 얻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다니엘의 경우는 여러분 중에서 그와 같은 신자 한 사람의 효력 있는 간절한 기도가 많은 것을 얻게 할 것임을 보여줍니다.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들어주시리라(시37:4).”

 

둘째, 하나님은 때때로 지혜로운 이유로 기도에 대한 응답을 늦추십니다. 수로보니게 여자의 경우가 여러분 모두에게 일어날 수 있습니다(마15:21-18). 얼마나 간절하게 그 여자가 기도했습니까!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그러나 예수는 할 말씀도 대답지 아니하시니.” 그녀는 기도하고 또 기도했지만 호의적인 대답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녀의 믿음은 거절당할 때마다 점점 강해집니다. 그녀는 예수님께서 더 이상 거절하실 수 없을 때까지 소리치고 따라가며 그에게 무릎을 꿇었습니다.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기도하는 사람들이여, 기도에 항상 힘쓰고 감사함으로 기도에 깨어 있으십시오. 한번 거절당했다고 잠잠해지지 마십시오. 응답을 지체하심으로 예수께서는 강청함을 요구하십니다. 구하고 찾고 두드리십시오. “약속이 오래 지체될 수 있어도 늦게 오지는 않습니다.” 강청하는 과부 비유에서(눅18:1-8) 여러분은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주시지 아니하시겠느냐?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주시리라”고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자녀들인 여러분들이 기도해야 할 것을 보여줍니다. 여러분은 밤낮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합니다. 이것은 한낮의 바쁜 시간에, 밤중에 외롭게 깨어있을 때에, 여러분의 부르짖음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듣고 계시는가를 보여줍니다. 그는 날마다 그것들을 쌓고 계십니다. 곧 풍성한 응답이 내려올 것입니다. 속히 응답하실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6장 9-11절에서 제단 아래서 기도하는 영혼들은 신자들에 대한 기도의 응답이 하나님의 놀라운 지혜로 잠간동안 지체되며 그것들 가운데 많은 것들이 그들이 죽은 뒤까지 완전히 응답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다시 놀라운 말씀인 요한계시록 8장 3절을 읽으십시오. 거기에 아버지와 함께 계신 위대한 중보자이신 주 예수님께서 하나님께 모든 성도의 기도와 함께 자신의 공로의 향기를 보좌 앞에 있는 금향로에 담아드리고 계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믿음 있는 하나의 기도를 잃어버리시는 법이 없습니다. 아벨로부터 오늘날까지 모든 신자들의 기도를 그는 제단에 쌓으시고 거기에서부터 그것들은 그의 아버지와 우리 아버지 되신 분께 지속적으로 올라갑니다. 제단이 더 이상 쌓을 곳이 없을 때 완전하고 영원한 응답이 내려올 것입니다. 사랑하는 이들이여,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오래 참으신다고 여러분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고 낙심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기도는 잃어버려지지 않습니다. 상인이 자기의 배들을 먼 해안에 보낼 때 그는 단 하루에 그것들이 짐을 가득 싣고 돌아오리라고 기대하지 않습니다. 그는 오랜 인내를 가집니다.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 아마 여러분의 기도는 그 상인의 배처럼 지체되었기 때문에 더 큰 축복으로 가득 실려서 돌아올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은 때때로 두려운 일들로 기도에 응답하십니다. 다윗은 시편 65편에서 말합니다. “우리 구원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의를 쫓아 엄위하신 일로 우리에게 응답하시리이다.” 여러분 중에서 하나님의 자녀들인 모든 이들은 그것이 사실임을 알았습니다. 여러분 중에는 존 뉴톤이 저 아름다운 찬송 “내가 성숙하기를 주님께 기도했을 때”를 썼을 때 겪었던 일들을 체험한 분들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온 마음으로 “주여, 내 믿음을 더하소서”라고 기도합니다. 이 기도에 응답하여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관련되어 있는 여러분의 비참함을 여러분에게 보여주셨습니다. 그가 여러분의 마음속에 있는 지옥을 드러내 보여주셨습니다. 여러분은 놀라고 당황하고 부끄러워합니다. 여러분은 외칩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 누가 이 사망의 몸에서 나를 건져내랴?” 여러분은 천 배나 큰 근심을 가지고 구주 하나님께 매달립니다. 여러분의 믿음이 커집니다. 여러분의 기도가 두려운 일들로 응답됩니다. 여러분 중의 어떤 이들은 기도하는 영을 구했습니다. “주여,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치소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고난을 더하셨습니다. 파도와 큰 물결이 우리에게 넘칩니다. 우리가 깊음 속에서 외칩니다. 고난을 받지만 우리는 기도합니다. 그가 우리의 마음의 소원을 허락하셨습니다. 우리의 기도는 두려운 일로 응답받습니다.

 

넷째, 하나님은 때때로 우리가 구한 것보다 나은 것을 주심으로 기도에 응답하십니다. 땅에 있는 다정한 아버지가 때때로 이렇게 합니다. ‘아버지 이 과일을 주세요’라고 아이가 말합니다. 아버지가 대답합니다. ‘안 돼. 너에게 더 좋은 떡이 있단다.’ 주님께서 자기의 사랑하는 바울을 그렇게 대우하셨습니다(고후12:7-9). 바울에게 자신을 찌르는 사탄의 사자인 육체의 가시가 주어졌습니다. 마음이 괴로워서 그는 부르짖습니다. “주여, 내게서 이것을 떠나게 하소서.” 아무런 대답이 없었습니다. 다시 그는 같은 말로 기도합니다. 여전히 응답이 없습니다. 세 번째 그가 무릎을 꿇었을 때 응답은 왔습니다만 기대한 대로는 아니었습니다. 가시는 뽑혀지지 않았습니다. 사탄의 사자는 지옥으로 돌려 보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자신의 사랑하는 가슴을 넓게 여셨고 말씀하셨습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 짐이라.” 아, 이것이 그가 구한 모든 것보다 그가 생각한 모든 것을 뛰어넘는 풍성한 것입니다. 아, 이것이 그가 구한 것보다 낫고 그가 생각한 것보다 나은 것입니다. 진실로 하나님은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행하실 수 있는 분입니다(엡3:20).

기도하는 신자들이여, 즐거워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구하는 것을 주시거나 아니면 더 나은 것을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저를 위하여 고르셔야 하는 것이 즐겁지 않습니까? 예수님께서도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라고 기도하셨다는 것을 여러분이 아실 것입니다. 그 소원은 허락되지 않았지만 하늘로부터 그를 돕는 천사가 그에게 나타났습니다(눅22:43). 그는 더 나은 것을 받았으니 진노의 잔을 마실 수 있는 힘을 받은 것입니다. 믿음이 있는 사랑하는 나의 양떼들이여, 여러분 중에 어떤 사람들은 만일 하나님의 뜻이라면 하나님의 이름이 영광을 받으시게 되도록 제가 여러분에게 속히 돌아가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고 있습니다. 저도 같은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우리가 상상한 것보다 더 나은 것을 주심으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실지라도 놀라지 마십시오. 아마 그는 우리가 생각한 다른 방식으로 우리로 말미암아 자신을 영화롭게 하실 수 있습니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제가 이러한 일들을 적어 보내는 것은 여러분들이 은혜의 보좌에 담대히 나아가게 하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을 기도하는 백성으로 삼으십니다. “너희 기도에 나와 함께 힘을 같이하여 나를 위하여 하나님께 빌어.”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이제 인내와 위로의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님을 따라서 서로를 향하여 같은 마음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케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다섯 번째 목회서신

(하나님께서 행하신 것과 받으신 보답 : 이사야5:4)

 

주 예수님의 이름 안에서 우리 하나님의 성령으로 정결하게 되고 거룩하게 되고 의롭게 된 나의 사랑하는 양떼 여러분 모두에게 여러분의 목사는 다시 은혜와 사랑과 평안을 있기를 기원합니다.

이 편지는 하나님께서 저로 여러분에게 보내도록 허락해주신 다섯 번째입니다. 여러분이 만일 싫어하지 않으신다면 제게 즐겁고 기운 차리게 하는 일입니다. 저는 에바브라와 같이 되고 싶습니다(골4:12). “저가 항상 너희를 위하여 애써 기도하여 너희로 하나님의 모든 뜻 가운데서 완전하고 확신있게 서기를 구하나니.” 제가 어떠한 다른 방식으로도 여러분을 위하여 힘쓰는 것을 하나님께서 막으셨으니 그같이 여러분을 위하여 힘쓰는 것이 제 마음의 기쁨입니다. 선하고 거룩한 목사였던 그린녹의 스코트 박사가 연로하여 죽기 전에 얼마동안 설교를 할 수 없을 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지금 나의 교우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때때로 나는 내가 그것을 할 수 있다고 느낍니다.” 이것이 제가 또한 생각하기를 좋아하는 바입니다. 때때로 나는 언약도들의 시대에 살았던 아멜리아 게디와 같으니 제가 그녀에 대해 여러분에게 말씀드렸습니다. 제 시간의 상당한 부분은 제 마음을 기도하는 일에 맞추도록 사용됩니다. 그러나 귀한 성령께서 나의 연약함을 도우실 때 저 자신과 저의 양떼인 여러분을 그의 손에 맡기고 하나님께서 포도나무가 번성하며 석류가 꽃피게 하시도록 기도하는 것은 저의 가장 큰 기쁨입니다.

이사야 5장 4절을 보시게 되면 여러분은 이러한 감동적인 말씀을 발견할 것입니다. “내가 내 포도원을 위하여 행한 것 외에 무엇을 더할 것이 있었으랴? 내가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 들포도를 맺혔도다.”

나의 사랑하는 교우들이여, 이 말씀들을 생각하십시오. 그리고 성령께서 그 말씀들 위에 불어서 그것들이 구원에 이르도록 여러분의 영혼들에게 감동하시기를 바랍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친히 그들을 위해 행하신 모든 일과 그들이 하나님께 드렸던 슬픈 응답을 생각하실 때 자신의 옛 백성들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깊이 탄식하시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스라엘의 자리에 들어갔으니 좋은 감람나무의 본래 가지들은 잘려나갔고 우리가 접붙여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셨던 모든 유익을 이제 우리가 즐기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 우리가 단지 들포도를 맺히고 있다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같은 탄식을 하실 이유는 없으시겠습니까? 여러분 각자가 여러분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행하시지 아니한 어떤 일을 더 행하실 수 있으셨는지 진지하게 생각하게 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아! 또한 여러분이 포도들을 맺혔는지 아니면 단지 들포도를 맺혔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첫째,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영혼을 구원하시기 위해 얼마나 많은 것을 행하셨는지 살펴보십시오. 그는 큰 구원자, 그리고 큰 구원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그는 사람이나 천사를 주신 것이 아니라 죄인의 속전으로 만물의 창조자를 주셨습니다. 그의 피는 보배로운 피입니다. 그의 의는 하나님의 의입니다. 이제 “일을 아니할 지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얼마나 귀한 말씀입니까! 스스로 의로워지려는 사람이여, 당신의 수고를 포기하십시오. 당신은 산에서 산으로 간 것이며 당신의 안식처를 잊은 것이니 당신의 계획을 바꾸십시오. 행하지 말고 경건치 않은 자들을 의롭게 하시는 그분을 믿으십시오. 하나님께서 그 아들에 관하여 주신 증거를 믿으십시오. 영광스럽고 완전하고 신적인 보증이 여러분의 발이 닿는 곳에 있습니다. 그는 여러분이 미칠 수 있는 곳에 계시니 그가 여러분 가까이 계십니다. 그를 붙잡고 사십시오. 그를 거절하면 망합니다! “내가 내 포도원을 위하여 행한 것 외에 무엇을 더할 것이 있었으랴?”

 

둘째, 또한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신 규례들을 생각하십시오. 그가 여러분을 포도원이 되게 하셨습니다. 스코틀랜드는 온 땅이 예전의 이스라엘과 아주 닮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낙스 때로부터 지금까지 이 땅에 얼마나 놀랍게 경건한 목사들을 세우시고 존속시켜 오셨는지요! 그는 온 땅을 교구들로 나누시고 우리 땅의 황무한 고지대까지 최고의 포도나무를 심으셨습니다. 수백 명의 경건한 일꾼들을 그가 보내셔서 그곳의 돌들을 골라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또한 여러분을 위해서도 이렇게 행하셨습니다. 그는 여러분 가운데 망대를 세우셨습니다. 그가 자신의 손으로 여러분 주변에 울타리를 치시며, 여러분 가운데 복음 망대를 세우시며 그 안에 복음의 포도주 즙틀을 세우시는 것을 보지 않았습니까? 그가 여러분 가운데 그리스도의 모든 지체들 중 가장 작은 자에게도 못 미치지만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한 저를 보내시지 않으셨습니까? 하나님의 성령께서 때때로 우리의 성소에 임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여러 마음들이 거기서 저들의 곡식과 포도주가 더할 때보다 더한 기쁨으로 넘치지 않았습니까? 여러 마음들이 거기서 “포도주에 지나는 사랑”을 맛보지 않았습니까? “내가 내 포도원을 위하여 행한 것 외에 무엇을 더할 것이 있었으랴?” 이제 저는 묻습니다. 우리가 어떤 열매를 맺었습니까? 참 포도입니까? 들 포도입니까? 아, 대부분의 사람들이 들포도 외에 아무 것도 보일 것이 없을까봐 걱정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한 교구로서 보신다면 무엇을 보시겠습니까? 아직도 하나님의 집에 전혀 상관이 없는 천여 명이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거룩한 눈이 기도하는 집에 거의 들리지 않는 자들, 오후에 그곳에 있기를 꺼려하는 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보지 않으시겠습니까? 안식일에 술집에 드나드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오, 어찌하여 그들이 들포도를 맺고 있습니까? 만일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가족들로 보신다면 무엇을 보시겠습니까? 기도하지 않는 가정이 얼마나 많습니까? 제가 저녁 늦게 혹은 이른 아침에 여러분의 창문을 지나면서 자주 시편 찬송이 들리나 귀를 기울였으나 아무 것도 듣지 못한 적이 얼마나 많았는지요! 하나님께서도 귀를 기울이셨으나 지금도 듣지 못하십니다.

그의 순전한 눈이 여러분 중에서 만일 여러분이 돌이키지 아니하면 언젠가 영원한 지옥에서 여러분의 소홀히 했던 자녀들을 만나게 될 얼마나 많은 무관심한 부모들을 보시고 계신가요? 얼마나 순종하지 않는 자녀들이 많습니까! 얼마나 불충한 하인들이 많습니까! 아, 어찌하여 들포도의 포도원과 같은가요? 만일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개인들로 보신다면 여러분의 영혼에 대한 진정한 관심을 가지도록 깨우침을 받은 적이 없는 사람들을 얼마나 많이 보시게 될까요? 자신의 죽어가는 영혼들을 위해 눈물을 흘린 적이 없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가요! 기도에 힘써보지 않은 영혼들이 얼마나 많은 가요! 무릎을 꿇는 일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는 영혼들이 얼마나 많은 가요! 그리스도를 붙잡음 없이 냉담해져서 안심하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가요! 여러분 중에 저 유일하고 확고한 언약을 붙잡은 적이 없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하나님께서 알고 계십니다! 믿는 일에 평안이 없으며, 평안이 없는데 “평안하다, 평안하다(렘8:11)”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가요! 하나님께서 여러분 가운데서 마음이나 삶의 변화가 없고 육체와 마음의 죄에 빠져있으면서 “네 마음으로 스스로 축복하여 내가 내 마음의 생각대로 행하여 갈증에 술취함을 더할지라도 나는 평안하리라(신29:19)”고 말하는 사람들을 얼마나 많이 보시겠는지요? 아, 어찌하여 여러분은 들포도를 생산했습니까? “그들의 포도나무는 소돔의 포도나무요, 고모라의 밭의 소산이라. 그들의 포도는 쓸개포도니 그 송이는 쓰며(신32:32)” 아, 여러분의 잘못에 대해 여러분이 영원토록 자신을 저주하게 될 것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멸망에 대해 자신의 손을 씻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위하여 행하신 것에 무엇을 더하실 수 있겠습니까? 만일 제가 더 이상 여러분에게 말할 수 없게 된다고 할지라도 나는 여러분의 모두의 피에 대해 깨끗하다고 여러분 모두를 오늘 증인으로 삼고자 합니다. 오, 하나님의 포도원에 심기운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여! 주님께서 여러분의 뿌리주변을 파고 계십니다. 만일 여러분이 과일을 맺으면 좋거니와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은 잘릴 것입니다(눅13:6-9).

이제 잠시 하나님의 자녀들인 여러분에게 말씀드립니다. 나의 사랑하는 이들이여, 제가 이같이 말하지만 저는 여러분을 향하여 더 나은 일들, 구원을 동반한 일들이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이와 같은 시련의 때에 여러분의 마음과 삶을 살피는 것, 하나님께서 내 안에서 어떠한 열매를 찾으실까 묻는 것이 얼마나 필요한 일이겠습니까?

여러분 안에 자신을 낮추는 어떤 열매가 있습니까? 여러분은 첫 아담과 관련이 있는 여러분의 악을 발견했습니까(롬5:19)?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의 마음의 역병들(왕상8:38), 거기 있는 부패의 지옥을(렘17:9) 발견했습니까? 여러분이 그의 영광을 위하여 한순간도 산 적이 없었다는 것을 아십니까(롬3:25)? 여러분은 영원토록 여러분 안에 있는 어떤 것에 의해서든지 결코 의롭게 될 수 없다는 것을 느끼십니까(계7:14)?

또한 여러분 속에서 믿는 일에 대해 무슨 열매가 있는지 생각하십시오. 여러분은 복음이 그리스도를 제시한 대로 그를 진실하게 완전히 받아들였습니까(요5:12)? 여러분이 죄인으로서 그에게 매달립니까(딤전1:15)?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아는 고상함에 비해 모든 것들을 해로 여깁니까(마9:9)? 여러분은 그분의 영광(계1:17), 그의 성취된 사역(히9:26), 그의 직분(고전1:30)을 느낍니까? 그분이 여러분의 영혼에게 태양같이 빛납니까(말4:2)? 여러분의 마음이 그의 아름다움으로 황홀해 합니까(아5:16)?

또한 여러분 안에서 거룩함을 쫓는 일에 대하여 무슨 열매가 있습니까? 이것이 여러분이 행하는 “오직 한 일”입니까(빌3:13)? 죄와 사망의 이 몸에서 건짐을 받기 위한 탄식으로 여러분의 인생을 쓰고 있습니까(롬7:24)? 아! 이러한 것이 없을까봐 저는 염려합니다. 대부분의 하나님의 백성이 밖에 있는 지옥에서 건짐 받은 것으로 만족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안에 있는 지옥으로부터 건짐을 받는 일에 크게 염려하고 있지 않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내주하시는 성령의 필요함을 느끼지 못할까봐 염려합니다. 저는 여러분이 믿는 자들을 활력 있게 하는 그의 “능력의 지극히 크심”을 알지 못할까봐 염려합니다. 저는 여러분 중의 많은 사람들이 위로자의 찾아오심에 외인들이 될까봐 염려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 대해 탄식하실 이유를 가지고 계십니다. “어찌하여 들포도를 맺혔는가?”

또한, 여러분 안에 하나님을 실제적으로 닮는 일에 대하여 무슨 열매가 있습니까? 하나님께 많이 상관되어 있는 것을 좋아합니까? “하나님과 동행하며” 창5:22. 그를 좇아서 사랑하며 사모하며 간청하며 애쓰며 달려나갑니까? 여러분은 세상으로부터 떨어졌습니까(시131)? 그것의 칭찬으로부터 그것의 미움으로부터 그것의 조롱으로부터 멀어졌습니까? 여러분은 자신과, 여러분의 것 모두를 하나님께 깨끗이 드렸습니까(고후8:5)? 여러분은 여러분의 의지가 하나님의 크신 의지 속에서 없어지기를 원하십니까? 여러분은 이제와 영원토록 여러분 자신들을 하나님의 팔에 맡기고 있습니까? 오, 여러분의 마음을 살피시고 그것들을 시험해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위해서 그것을 행하시고 여러분을 “영원한 길로 인도하시도록”(시139:23,24) 구하십시오.

저는 우리 중의 많은 사람들이 주리신 주님께서 열매를 찾았으니 아무 것도 얻지 못하신 길가의 무화과와 같지 않나 깊이 염려하고 있습니다. 아! 우리는 배은망덕한 포도나무, 목사, 교인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무엇을 더 할 수 있으셨겠습니까? 햇빛과 그늘과 비와 바람과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선함과 엄중함이 우리에게 시험되었습니다. 하지만 그에게 돌려드린 것은 무엇입니까? 불평과 찬양 중에 어느 것이 우리 교회로부터 하늘로 큰 소리로 올라갔습니까? 우리의 교회가 주님의 동산과 황량한 광야 중에 어느 것을 더 닮았습니까? 믿음이 있는 기도의 영원한 향기와, 위선과 깨어진 언약의 “하나님의 코의 연기”중에서 어느 것이 더 많습니까?

제가 여러분을 부끄럽게 하기 위하여 이것을 쓰는 것이 아니라 오직 여러분을 내 사랑하는 자녀같이 권하려 하는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만일 여러분 중에 어떤 이들이 뿌리를 레바논처럼 뻗으며 인내로 열매를 맺고 있는 백합처럼 자라고 있는 이들이 있었고 있다면 “주님께서 의인을 사랑하신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별의 수효를 아시는 그분이 여러분을 기뻐하실 것입니다. “주께서 자기 백성을 기뻐하시나니 그는 온유한 자를 구원으로 단장하시리라.”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스스로를 지키십시오. 여러분의 효력있는 부르심의 모든 과정을 잘 통과하여 나아가십시오.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날마다 믿음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넓은 마음을 가지기를 구하십시오. 말의 문이 제게 열리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저의 매임을 기억해 주십시오. 제가 자신을 완전히 부인하며 저가 마지막 호흡할 때까지 그의 모든 뜻을 기꺼이 행하며 감당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여러분 모두가 이제와 우리가 재촉하는 그 날에 주님의 긍휼을 얻게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주 예수님의 은혜가 여러분의 영혼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